여성에게 사회는 더 열려야한다|정의숙 이대총장이 말하는「여성고등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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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여성 신교육의요람 이화여대가 올해로 창립 1백주년을 맞았다. 또 요즈음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가 팽배했던적도 없었다.
즈음하여 정의숙 이화여대총장을만나 한국여성고등교육의 현실, 앞으로의 향방등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학입시의 큰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이대 캠퍼스곳곳에는 오늘의 대학현실을 말하듯 『86합격을 축하합니다-민주를 향한 백년의 역사, 이화 그대의 숨결이 민족의 새 장을 연다-이화여대 총학생회』등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2월중순의 따스한 햇살이 밀려드는 본관 3층 돌집 총장실에서 마주한 정의숙총장(56)은 쇼트 커트 머리에 상아빛 드리피스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 한줄의 진주목걸이, 웃옷 포킷에 꽂힌 자주빛 비단 행커치프가 이대생들의 총장으로서의 안목을 말해준다.
-생각과는 달리 정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방학중인데도 오가는 학생들의 수도 많아 놀랐읍니다. 특별행사라도 있는지요. 『아니예요. 지난해 2학기부터 전공과는 상관없이 원하는 학생들에게 영어·불어·일어등 외국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읍니다. 학생들의 외국어 열풍에 맞춰 방학중에도 학교실습실을 개방하고 있는데 재학생 8주, 신입생 5주의 어학코스에서 총 3천3백명이 공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립 1백주년을 맞는 이화의 근본정신은무엇입니까. 『오늘에 지난 1백년 역사를 되새겨 곱씹어보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여성의 인간화가 이화정신이라고 할수있을것 같습니다. 고등교육을 통해 각분야의 여성지도자를 배양해 조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해온 역사속에 그정신은 들어있읍니다.실제로 우리의 선배중 많은 분들이 초창기에는 계몽적인 지도자로, 일제하의 민족수난기에는 민족운동의 동참자로, 해방후에도 민족과 나라를 섬기는일을 몸으로 구체화하셨읍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우리는 너무 안이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게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학현실, 대학생들의 사회비판과 참여에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대학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학문을 하는 것입니다. 정치·경제·사회·역사등 우리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분석·연구·검토해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일은 있을수있지요. 문제는 대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너무 정치지향적이 되는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생님들은 계속 학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말고 노력해야지요』
-한국여성 고등교육의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최대의 여성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이화의 2000년대를 바라보는 전략은 무엇입니까. 『정말 학문을 하는 기능으로서의 여성 고등교육 현실은 미흡한 점이 있지요. 따라서 학문의 질적인 탁월성을 지향하려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오고 있읍니다. 오는 21세기를 탈공업시대, 정보와 전자과학의 시대로 전망할때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맞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직업교육을 강화할 것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욕구가 터질듯 팽배한 요즈음입니다. 그에 대처한 어떤 방안이라도….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에게 폐쇄적입니다. 요즈음은 90%가 넘는 학생들이 결혼과 관계없이 자신의 생애를 살아가는데 직업을 갖고자 합니다. 능력과 의식이 개발된 그많은 여성인력을 담고 활용할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 갈등이 큽니다. 성서의 구절처럼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마련되지 않은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4, 5년전 학교부설 한국여성연구소에 「사회발전에 따른 대학출신여성 사회진출을 위한 방안」을 연구케했어요. 오는 5월『한국의 여성고등교육과 미래의 세계』라는 주제의 창립 1백주년기념 심포지엄에서, 또 이번 19∼21일에 열릴 전체교수회의에서도 구체적인 사회진출방안을 집중토의합니다. 그밖에 학교안 직업보도센터의 강화, 직업개발 교육등이 추진되고 있읍니다.
-가끔 대두되는 이화여대의 남녀공학설에 관해서 얘기해 주십시오. 『남자분들은 은근히 남녀공학이 안되길 바라는것 아니예요? (웃음) 아직 남녀의 고등교육 기회균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는 여자대학은 할일이 많습니다』
김활란·김옥길씨에 이어 세번째 한국인 미혼여성 총장으로 79년 취임한 정의숙총장. 그는 지난 6년동안의 격동기를 견뎌낼수 있었던 힘은 선배·동창·동료교수들의「소중한 것을 섬기는 이화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얘기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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