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취재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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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3일 저녁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신문기자들이 전경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일은 공권력과 기자의 취재자유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고위간부가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전경들에 의해 취재기자들이 높은 계단에서 내동댕이쳐지는가 하면 팔이 비틀리고 머리카락이 휘어 잡힌 채 끌려간 일은 흔한「가십」적 사건이 아니다.
그때의 상황은 신문기자들이 몹쓸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민추협사무실에서 개헌서명관련서류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과정을 취재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기술하면 사법경찰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도 아닌 기자들이 지켜보려다 그 봉변을 당한 것이다.
물론 법의 어떤 조목을 봐도 기자들이 큰 죄를 지었거나 불법을 자행했다는 구절은 없다. 경찰관 직무 집행 법을 봐도 그 자리에 있는 기자를 때려 내 쫓아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그렇다면 경찰이 고의로 기자들을 밀어내고, 국민의 눈과 귀로부터 차단된 가운데 법을 집행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개헌서명운동 시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경찰이 법원의 영장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공무집행을 하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기자가 폭행을 당해야 할 이유가 뭔가.
새삼 우리 헌법에 명시된 언론자유의 조문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더구나 현행 헌법정신에 근거한 언론기본법의 정보청구권까지 구차하게 설명할 계제도 아니다.
한마디로 이번 우리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일이 미묘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경찰은 무슨 감정적인 처사로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아도 될 만하게 되었다.
얘기를 거꾸로 해서, 만일 경찰이 기자들 모르게 그런 영장을 집행했다면 도리어 그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있다.
오죽하면 여당의 주요 책임자도 이번 전경의 집단폭행을 보고『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겠는가. 이 얘기는 상식에 벗어나는 치졸한 행위였다는 핀잔이다.
기자들의 항의가 없을 수 없다. 9개 언론사의 경찰출입 기자단은 이번 사건이『언론사상 유례없는 최악의 사태이며 경찰이 의도적으로 유발한 언론침해』라고 항변했다. 기자협회도 그런 주장의 성명을 냈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1971년 인도차이나 전쟁의 근거를 다룬『펜터건 페이퍼(국방성문서) 사건』이 있었다. 이 문서를 신문에 게재한 워싱턴 포스트 지와 뉴욕 타임즈 지가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때 미 대법원의 판결은『게재허용』이었다.
그 판결문에서「워런·버거」대법원장은 신문을 지칭해『국민의「알권리」의 신탁자』라고 했다.
또「포터·스튜어트」법관은 의견서를 통해『확실히 국가와 국민에 대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치는』경우가 아니면 문제의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금 우리는 국가기밀의 중요문서를 놓고 보도할까, 말까 를 고민하는 계제도 아니다. 그런 경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언론자유의 가장 원초적인 취재자유의 문제에서 물리적 폭행을 당했다.
이것은 호사스럽게 미국대법원 얘기까지 인용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창피한 일이다.
국민의「알 권리의 신탁자」라는 점에서, 또「확실히 국가와 국민에 대해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치는」일도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의 언론 관과 우리나라의 언론 관이 이처럼 시각을 달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번 경찰의 기자에 대한 집단폭행은 모든 기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명이 되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의 법 조치되어야 할 것이다.
신문기자의 개인 적인 취재활동과 자유의 보장은 우리 언론자유를 내보일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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