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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새벽 1시 난수방송…남파 공작원에 내린 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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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북한이 최근 대남 난수(亂數)방송을 16년 만에 재개한 건 남한 내 암약하는 공작원에게 지령을 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복수의 대북 소식통이 27일 밝혔다. 관계 당국도 이들 공작원에 의한 요인, 탈북 인사 암살이나 테러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대응책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6월 24일, 7월 15일 두 차례 모두
같은 혁명가요 튼 직후에 나와
요일·시간 특정, 교란용 수준 넘어

익명을 요구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평양방송을 통해 지난 15일 새벽에 나온 난수 방송을 정밀 분석한 결과 우리 공안망에 혼선을 주거나 남한 내부를 교란하기 위한 심리전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대남 지령을 겨냥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계 당국은 난수 해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난수 방송은 5자리 안팎의 특정 숫자들을 방송으로 내보내면 이를 난수표나 미리 약정한 책자를 이용해 의미를 풀어내는 비밀 공작용 교신 수단을 말한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난수 방송이 나오기 직전 평양방송에서 한 곡의 경음악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파악됐다”며 “확인 결과 북한의 혁명가요인 ‘기쁨의 노래 안고 함께 가리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북한이 6·25 당시 공작원들의 활동을 소재로 1970년대에 만든 연작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주제가로 알려져 있다. 이 소식통은 “난수 방송에 앞서 이 노래가 나온 건 남한 내 공작원들을 ‘6·25 전사’ 수준으로 치켜세우고 지령 이행을 독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수 방송이 특정 날짜와 시간대에 이뤄진 점도 당국은 주목한다. 북한은 지난 15일에 앞서 6월 24일에도 난수 방송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금요일 오전 1시쯤이다. 이 소식통은 “미리 요일과 시간대를 약속해 놓은 뒤 난수 방송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지 심리전 수준이거나 교란 목적이었다면 난수 방송 송출 시점을 이같이 맞출 필요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평양방송이 적어도 2명 이상의 공작원을 대상으로 난수 방송을 한 것도 관계 당국이 주시하는 대목이다. 15일 난수 방송은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복습과제”라고 예고한 뒤 숫자를 불렀다. 지난달 24일에는 물리 과제를 내는 방식이었다. 소식통은 “평양방송이 언급한 ‘27호’는 특정 공작원의 호출명이라기보다는 비밀 공작사업의 암호명이거나 복수의 공작원 그룹을 의미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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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북부처는 이 같은 평양방송의 난수 방송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난수 방송을 재개했다는 언론 보도(본지 7월 19일자 1, 18면) 이후에야 사실 파악에 나서는 등 대북 감시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방송 24시간 모니터 체제를 강화하고 국가정보원 등과 대북 정보 공조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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