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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ARF서 드러난 한국 외교의 무기력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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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열린 2016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및 관련 회의가 사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어제 폐막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27개국 외교 수장이 총출동하는 ARF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은 물론이고 남북한이 참여하는 이 지역의 유일한 다자안보 협의체라는 점에서 매년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올해는 남중국해 분쟁을 둘러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결정으로 역내 갈등이 고조된 시점에 열려 더욱 관심을 모았다.

ARF에서 북핵은 늘 주요 이슈였다.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놓고 남북한은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왔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은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제재 기조를 굳건히 유지하고,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했다. 하지만 중국이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고, 그 틈새를 노려 북한이 적극적 외교 공세에 나서면서 대북 공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ARF 논의 결과를 담은 의장성명에 사드 배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견고한 대북 압박 대오(隊伍) 유지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둘러 사드 배치를 결정해 공표한 탓도 있지만 그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보다 당당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고,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국 외교의 무능에도 문제가 있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누가 보더라도 명분은 우리 쪽에 있다. 북한의 무모하고 위험한 핵 개발을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막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위적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한국은 의장성명에 사드 배치에 관한 언급이 포함되느냐 마느냐는 문제로 막판까지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핵 문제에 관한 창의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로 다자 간 논의의 장(場)을 주도하며 끌고 갈 수 있을 텐데도 오히려 끌려다니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