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당적 ‘비정규직 차별개선’은 시대정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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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가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위해 포럼을 만들기로 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최근 국회에서 ‘비정규직 차별개선 포럼’을 출범시키겠다고 밝히면서 탄력이 붙고 있다. 김 의원은 “비정규직 확산이 저출산을 가속화하는 근본 원인 중의 하나”라며 포럼 출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포럼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만큼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로 대기업과 경영자 편에서 입법 활동을 해 온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나서 차별 해소에 앞장서는 것부터 이례적이다. 더구나 이 포럼에는 김무성·유승민·나경원 같은 여당 중진은 물론이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 같은 야당 국회의원까지 50여 명이 참여한다. 대립과 갈등의 아이콘처럼 된 국회의원이 초당적 자세로 뜻을 모으기로 했다는 얘기다. 이는 국회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이념과 정파를 초월한 시대정신이자 국가적 공동 과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각에서는 특정 국회의원의 세 불리기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이미 여야 주요 3당 대표는 20대 국회 원내교섭단체 연설에서 중향(中向) 평준화나 포용적 성장이란 용어로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비정규직 차별 개선 포럼은 이제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보면 된다.

이제 심각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비정규직은 소득 양극화의 근원으로 꼽힌다. 현재 비정규직은 670만 명으로 1930만 임금근로자의 32.5%에 이른다. 그간 정부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2007년 7월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 비정규직 고용 남발을 억제하고 나섰지만 정규직과의 이중구조를 개선하지 못했다. 문제는 임금·근로기간 같은 고용 차별은 개인의 불이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업난 끝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하면 저임금을 받고 2년마다 다시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보면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 결혼이 늦어지고, 이는 다시 저출산·저성장으로 이어진다. 최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35%에 그친다. 이러니 초혼 연령이 최근 20년 사이 5세나 높아지고, 출산율은 1.24로 일본의 1.46보다 낮다. 이는 성장 동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3포’ ‘7포’와 함께 헬조선과 흙수저 얘기가 계속 나와선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미국·영국도 경쟁적으로 양극화 해소에 나서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미 민주당은 정강에 “민주당원은 요즘 소득과 부의 극단적인 불평등이 미국 국민과 우리의 경제에 나쁘다고 본다”고 적시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역시 양극화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작용했다. 국회는 비정규직 차별개선 포럼을 통해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양극화가 촉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