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 아이] 노무현 대통령 구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지난주 초 한겨레신문이 발표한 노무현 대통령 국정운영평가 여론조사 결과는 두가지 점에서 충격이었다. 넉달 새 지지도가 31%포인트나 급락한 것은 새삼 놀랄 일이 못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추락해왔기 때문이다.

정작 충격은 지지도 급락의 주된 이유였다. 盧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로 응답자의 30.3%가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꼽았다. 대통령이 그 언행 때문에 국민 지지도가 급락한 경우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하기야 대통령을 '흔들어대는' 조.중.동의 조사였다면 청와대 측도 할 말은 많았으리라. 당선 후 몸소 찾아가고, 대통령 '말꼬리 잡기'에는 의연했던 신문의 조사에서 그 언행이 문제로 드러났으니 충격은 더했다.

'후보 때 지지율이 10%대까지 내려갔어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 여론조사는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되받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무줄 같은 지지율이 아니고 공인으로서의 대통령 언행을 국민이 우려하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위 대통령 '품격(character)'의 문제다. 품격 문제로 곤혹을 치른 대통령 하면 미국의 빌 클린턴을 떠올린다. 지능지수 1백80에 다독(多讀) 박식한 그는 타고난 달변이었다.

그는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말을 너무나 잘 둘러댔고 성추문 등 부적절한 몸가짐과 일부 거짓 증언으로 신뢰를 잃은 것이 문제였다. 정직성과 일관성 및 품위(decency) 등 지도자의 주된 덕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 수 없다.

盧대통령 언행에서 제기된 문제점은 대충 세가지다. 상황에 따른 말 바꾸기가 첫째다. 특히 민감한 외교분야에서 이는 국익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둘째 국민 대중에게 진솔하고 서민적인 것은 좋지만 말이 저속하거나 품위를 잃어서는 곤란하다. '성질이 더러워도 밀어달라'는 말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며 대통령이 '성질을 부려'서도 안된다.

셋째 대통령의 언어가 통합과 화합보다는 편가르기식이고 너무 투쟁적이다. 이는 독재와 반독재, 주류와 반주류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의식과 사고체계의 연장으로 믿어진다.

개혁 대통령, 탈(脫) 권위,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는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류와 주류적 가치, 주류적 성취에 등을 돌려서는 개혁이나 탈 권위는 고사하고 대통령직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편가르기식 '신주류'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코드를 맞추며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정책보다 언행을 문제삼다 보면 자칫 인격모독을 넘어 '인격 살인(character assasination)'으로 치닫는다. '쿠데타가 몇번 났을 상황'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틀렸다' 운운은 대통령 공인에 대한 인격 살인에 가깝다.

대통령이 대내외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못받고 동네북이 되는 상황에서 동북아 중심이나 2만달러 시대 구호는 공허하다. '정대철 구하기'의 정치게임보다 대통령의 제자리 잡기를 위한 정부 여당의 '盧대통령 구하기'가 더 급하다.

그러려면 盧대통령 자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써준 원고대로 읽는 것은 무능해서가 아니다. 공인의 말은 토씨 하나, 표현 하나에 의미가 실리기 때문이다.

말을 가다듬고, 청와대 진용을 개편하고, 언론과 외국 등 대외 관계 전반의 소통 메커니즘을 재정립하는 등 '피해관리(damage control)'에 본격 나서야 한다. 그러기에는 이번 여름이 너무 짧다.

변상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