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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고요한 드론 살육전, 누구를 피해자로 만드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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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전쟁의 실상을 현미경으로 보듯 치밀하게 그려 낸 ‘아이 인 더 스카이’(원제 Eye in the Sky, 7월 14일 개봉, 개빈 후드 감독). 이 영화는 지난해 북미 개봉 당시 “현대 전쟁의 물리적 영향과 정신적 피해를 알리는 보기 드문 수작”(워싱턴 포스트) 등 평단으로부터 크게 호평받았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낼지 모르는 테러를 막기 위해 무고한 소수를 희생시켜도 되는가.’ 이 영화는 드론이 만든 새로운 전쟁 풍경을 토대로, 인간성과 전쟁 윤리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에 드러난 첨단 전쟁 기술과 그로 인해 초래된 윤리적 문제들을 살펴봤다.

‘아이 인 더 스카이’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드론은 인간을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만드는가
극 중 사건은 영국군 캐서린 파월(헬렌 미렌) 대령이 미군과 연계된 케냐 당국의 감시 카메라로 테러 용의자를 찾으며 시작한다. 파월 대령은 처음엔 테러리스트 생포 작전을 계획했지만, 그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으로 무장하며 자살 테러를 준비하는 조짐을 보이자 사살하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영국군 프랭크 벤슨(앨런 릭먼) 장군에게 드론 미사일 공습 허가를 요청하지만, 국무 조정실에 모인 관료들은 법적·정치적 명분을 따지며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흔히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기는 먼 곳에서 적을 몰래 감시하고 미사일을 쏘는 전쟁 무기다. ‘아이 인 더 스카이’는 드론이 바꾼 현대 전쟁의 풍경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딱정벌레와 똑 닮은 드론을 적진 내부에 침투시키고, 드론이 촬영한 화면에 담긴 인물이 누구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분석한다. 작전 현장인 케냐와 수천㎞ 떨어진 미국 라스베이거스, 영국 런던 등에서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화상 회의를 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드론으로 관찰하고, 드론으로 공격하는 행위가 미치는 영향을 묘사한 대목이다. 파월 대령은 케냐 부대원에게 적진에 더 가까이 가라며 위험한 명령을 거리낌 없이 내리고, 관료들과 벤슨 장군은 확률로 산정한 부수적 피해치를 작전 근거로 쓴다. 외과 수술식 정밀 타격을 목표로 하는 현대 전쟁의 단면이다. “대개 드론은 피해자를 향한 전쟁 참여자의 죄책감을 덜어 준다. 물리적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전쟁을 가상 시뮬레이션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즉, 살인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무감각한 전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밀리터리 잡학노트』(2010, 호비스트)를 쓴 장익준 작가의 말이다.

-테러리스트 암살 작전은 정당한가
극 중 영국과 미국이 테러 조직에 대응하는 태도는 실제와 퍽 닮았다. 실제 영국은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랐다 해도, 영국 국적을 가진 인물이라면 사살하지 않고 생포하려 한다. 정치적 명분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리를 중시하는 미국은 테러 조직원이라면 미국 국적을 가졌더라도 우선 사살한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대테러 정책의 핵심은 드론을 활용한 테러리스트 사살이다. 극 중 영국 관료들은 생포가 불가능할 경우 영국 국적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갑론을박하는 반면,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더라도 상관없이 사살하라”고 신속하게 답한다.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장면이다. 이 영화에선 결국 파월 대령의 뜻에 따라 사살 작전으로 바뀐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 볼 것은 “아직 테러를 시도하지 않은 ‘용의자’를 죽여도 되는가”(장익준 작가)다. 이는 2001년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꾸준히 나왔던 질문이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은 전쟁 포로법과 국가의 법 집행 규칙을 섞어 테러 용의자를 특별한 증거 없이 사살해 왔다.” 미국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말이다(경향신문, 2012년 7월 16일). 일반 범죄 수사하듯 테러 용의자를 찾아낸 후, 적군을 바로 죽이는 전쟁법을 적용해 사살한다는 것이다. 개빈 후드 감독 역시 “이러한 암살 정책이 정말 세상을 안전하게 하는지 질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7~8년간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추정되는 수백 명을 죽였지만, 이들 무리는 줄어들긴커녕 더 많아지고 있다.”

-다수를 위해 소수는 희생되어야 하는가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부수적 피해가 명확해진 상황을 제시한다. 스티브 와츠(애런 폴) 중위는 헬파이어 미사일 투하 명령을 받고 발사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여덟 살 남짓의 소녀가 빵을 팔기 위해 타깃 지점 가까이 들어서는 걸 발견한다. 파월 대령은 당장 미사일을 쏘라고 명령하지만, 와츠 중위는 작전 보류를 요청한다. 영국 국무 조정실에선 ‘80명의 잠재적 피해자를 위해 한 명의 확실한 희생자를 만들 것인지’를 두고 고민한다. 테러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무고한 소수를 죽일 수 있는가. 후드 감독은 이 상황을 두고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2010, 와이즈베리)에 나오는 ‘열차 실험’의 치열한 현장 버전”이라고 말했다. ‘열차 실험’은 멈출 수 없는 열차로 인해 철로 위 다섯 명의 인부를 죽일지, 비상 선로로 방향을 틀어 그 위에 서 있는 한 명의 인부를 죽일지 선택하는 상황에 관한 질문이다.

극 중 등장인물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비겁한 선택을 한다. 바로 다수를 위한 선택이다. ‘무고한 아이를 우리 드론으로 죽인 건 옹호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놓는 신임 장관 안젤라(모니카 돌란)마저 정치적 명분을 더 염두에 두고, 와츠 중위는 상부의 명령을 따른다.

테러 용의자를 사살한 후 벤슨 장군은 어린 딸의 선물을 챙겨 귀가하고, 빵을 팔던 소녀는 피폭당해 병원에 실려 간다. 이 순간 전쟁의 비정함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보는 이의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윤리극을 통해, 영화는 ‘전쟁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도 완전히 정의로울 수 없다’는 회의적 태도를 드러낸다. 무인기의 ‘원격 살인’은 인간을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만드는가, 피해 지역 약자의 인권을 얼마나 쉽게 저버릴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서 당신은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현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쟁터에서 사람들은 서로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점이다. 정의를 찾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더없이 냉정한 태도로 폭력에 의지한다.” 후드 감독의 말이다.

<드론 기술,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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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엔 헬파이어 미사일을 탑재한 공격형 드론MQ-9, 새 모양의 소형 감시용 드론, 풍뎅이 모양의 초소형 감시용 드론이 등장한다. 제작진은 “MQ-9, 즉 리퍼(Reaper)는 정착과 공격이 가능한 대형 드론을 일컫는 실제 모델”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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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 모양 드론과 ‘링고’라 불리는 풍뎅이 모양 드론은 기존에 출시됐거나 개발 중인 MAV(Micro Aerial Vehicles·초소형 무인 항공기) 모델의 디자인을 미세하게 수정한 것”이라 말했다.

극 중 상황처럼 초소형 드론의 해결 과제는 배터리다. 오랫동안 공중에 떠서 영상을 촬영, 전송하는 데 많은 전력이 소모되기 때문. 후드 감독에 따르면 “공중 비행 시간이 더 늘어나면 암살 대상을 식별한 후 극소량의 탄저균을 배출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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