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제 점심 등 진풍경…과천 새 정부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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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과천 정부 제2청사에서는 갖가지 진풍경이 많이 벌어진다.
콩나물교실도 아닌데 공무원들이 「짝수반」「홀수반」으로 나뉘어 2부제 점심을 먹는가하면, 「46」이라는 숫자가 크게 쓰인 방문증을 단 내방객이 4동6층에는 갈 수 있어도 바로 이웃한 3동 현관에서는 출입을 저지 당해 옥신각신하는 광경을 연출하곤 한다.
매일 하오 5시만 되면 어김없이 애국가에 이어 하낫둘 하는 힘찬 국민체조 구령소리가 청사전체를 흔들지만 그 시간에 체조를 하는 공무원은 거의 없고 그때부터 부지런히 짐들을 챙겨 5시15분쯤 되면 벌써 사당역행 퇴근버스 1호차(5시25분발)를 타려는 행렬이 추위 속에 줄을 선다.
점심시간이면 각 동 로비마다 예비군훈련장에서나 보는 단체급식용 도시락을 팔고 사는「반짝시장」이 선다.
하루 수백 개씩 도시락이 거래되기도 한다. 청사 내에서도 횡단보도와 차도를 구별 못했다가는 비록 고급공무원일망정 당장 귀따가운 호루라기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아직 동자부와 경제기획원의 이사가 끝나지 않아 군데군데 어수선한 모습인 과천청사는 벌써 갖가지 문제점들을 이곳 저곳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우선 경제부처가 모두 모여있는 과천청사가 여러 가지 면에서 몹시 비효율적이며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부부처가 서울과 과천으로 일원화됨으로 해서 생겨난 공간적인 거리도 문제지만 약5천6 백명의 공무원이 일을 하는 행정청사만 덩그렇게 들어서고 식당·병원·은행·교통편 등 거의 모든 부대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아 과천청사는 통신시설만 끊긴다면 그대로 「고립된 섬」이 될 판이다.
또 과천청사의 관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통제」위주이지, 그곳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나 다니러 오는 민원인들의 「편익」은 뒷전이라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천청사의 이사비용도 적지 않이 들어갔다. 상공부 1천5백 만원, 노동부 9천6백 만원, 재무부 1천5백만 원, 건설부 7천4백만 원씩의 이사비용을 썼고 동자부 1천2백만 원, 기획원은 1천9백만 원의 이사비용을 잡고있다.
그러나 다른 부처야 어차피 서울에서 이사를 해야하니 그렇다 치고 기획원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1동에서 4동으로 5백m정도 자리를 옮긴 건설부가 7천4백만 원이나 되는 이사비용을 들인 것은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과천청사의 구내식당은 국무위원 식당을 포함해 약2천2백 석 정도. 또 가장 가까운 청사주변의 식당도 1km가량은 걸어가야 될 만큼 떨어져있다.
때문에 5천여 명의 공무원들이 한꺼번에 식사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굳이 산수를 맞추려니 요즘 과천청사의 공무원들은 짝수동·홀수동 근무자로 나뉘어 각각 짝수번째 주, 홀수번 째 주에 「먼저」식사를 하게 돼있다.
점심시간에는 수천명의 공무원들이 일제히 움직이고 긴 행렬을 연출해 마치 단체훈련장을 연상시킨다.
먼저 식사를 하는 조는 상오 11시40분부터 12시10분까지, 뒤에 식사를 하는 조는 12시10분부터 40분까지 각각30분간 식사시간이 배정돼 있는데 이로도 충분치 않아 지난 22일부터는 삼양도시락과 서울영양식품개발공사에 주문, 하루 1천 개씩의 단체급식용 도시락을 각 동 로비에서 팔고 있다.
청사 앞을 지나는 버스노선이 아직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
아침 통근버스를 놓친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과천청사에 일이 있는 민원인들도 택시를 안타면 버스정류장에서 2km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과천의 어느 공무원이 서울시 교통과에 이같은 불편함을 하소연했더니 『좀 걸어가면 어떠냐』는 퉁명스런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 통에 덕을 보는 것은 택시영업. 과천청사로 들어가는 서울택시는 어김없이 6백∼1천원씩의 웃돈을 요구하고 과천청사와 사당지하철 역구간만을 전문으로 뛰는 과천택시들도 한사람에 1천원씩 4명 합승이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농협과 우체국은 청사 내에 있으나 은행은 한곳도 없고 또 보잘것없는 의무실은 딱 한 군데 있으나 가장 가까운 병원은 2∼3km를 나가야 한다.
과천공무원은 웬만하면 은행이용도 삼가고 아프지도 말아야하는 것이다.
또 민원인들에게 내주는 방문증은 가고자 하는 동과 층수가 숫자로 명시돼 있어 예컨대 4동 건설부에 들렀다가 3동 재무부를 가려면 다시 안내동까지 가 방문증을 바꾸어 달아야 할만큼 불편하다.
더우기 과장급이하의 공무원들은 비록 자기차를 손수 운전해 출퇴근을 하더라도 차량통행증을 받지 못하게 돼있다.
주차사정 때문인지, 공무원의 청렴도 때문인지 이유가 알쏭달쏭 하지만 그러고도 차를 탄채 신분증을 흔들어 보이면 다 「통과」다.
과천 공무원들의 서울나들이, 서울 민원인들의 과천 나들이도 「한 나절」 일이 되기 일쑤다.
보통 국무회의는 하오 3시에 자주 열리므로 국무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날 오후의 장관결재는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
또 국·과장급 각 부처회의가 기획원이나 제1청사에서 열리면 회의참석자의 방은 거의 하루종일 비게 된다.
서울에서 과천까지 비록 30∼40분이면 갈 수 있다지만 부처간 협의나 공무원들과의 면담약속이 대개 하오 2∼3시를 전후해 이루어지므로 일을 마치고 나면 「퇴근하기엔 좀 이르나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은」 때가 되고 마는 것이다.
과천의 전세값·빌딩임대료는 요즘 많이 올랐다.
보증금 2천 만원에 월35만원의 임대료를 내던 어느 음식점(58평)은 요즘 빌딩주인으로부터 월60만원씩 내라는 요구를 받고 이를 50만원으로 깎자고 협상중이다.
전용면적 l8평 아파트는1천4백∼1천5백만원은 줘야 전세를 둘 수 있는데 약 한달새 2백∼3백만원이 뛴 시세다.
경제부처가 과천으로 옮겨가고 봄철이 다가오면서 집값은 가만있는데 전세값만 뛰고있는 것이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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