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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래퍼요? 오 마이 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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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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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150통의 섭외 전화를 받는 비와이. 그가 사진을 찍을 때 주문한 것은 하나였다. “멋있게, 폼나게 찍어주세요.”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런 래퍼가 또 있을까. 지난 주말 Mnet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5’ 우승 후 전국의 교회에서 간증 요청이 빗발친다. 길가다 마주친 중년 여성들이 수험생 자녀를 위해 사인해 달라고 달려든다. 교회와 부모가 좋아하는 래퍼라니. 그는 ‘스웨그(자기 과시)’와 ‘여혐’ ‘노골적인 속물주의’, 또는 욕설과 디스(비방)가 대세인 힙합에 ‘착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욕설 대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안 뵈는 것의 증거(히브리서 11장 1절)’라며 성경구절을 인용한 랩을 선보였다.

욕설·비방 없는 성경 랩으로 인기
전국 교회서 간증 요청 빗발쳐
“예수 가르침 담았을 뿐 착하지 않아
싸이 형도 빌보드 차트 2위 했는데
난 10년 뒤 1위쯤 하지 않을까”

착한 힙합, 착한 래퍼, 신앙심 가득한 랩으로 전도하는 비와이(23·이병윤)다. 경연곡 ‘포에버’와 ‘데이 데이’를 음원 차트 1위에 올리며 ‘괴물 래퍼’로 급부상한 그는 강렬한 속사포 랩핑으로 평소 힙합을 몰랐던 중장년 팬들까지 사로잡았다.

20일 서울 서소문 본사에서 만난 그는 흰색 티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액세서리라고는 손목시계와 오른손 약지에 낀 커플반지뿐이었다. 자 대고 자른 듯 일렬로 반듯한 앞머리에 그 흔한 문신도 없었다.

‘착한 래퍼’라고 불리는데 마음에 드나.
“마음에 안 든다. 나, 착하지 않다. 요즘 시대에 착하다는 말은 바보 같다는 말과 같다. 앞으로 착한 랩만 써야 하나. 다양한 음악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나는 유혹에도 빠지고, 욕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예수가 내게 가르쳤던 것을 음악에 담았을 뿐인데 갑자기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유대 사회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나는 전도사가 아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착한 래퍼라는 이미지, 풀어야할 숙제가 됐다.”

이름 영문 이니셜 ‘BY’에 이유가 되자는 의미를 더해 ‘BewhY’라고 풀이한 이름대로 그는 존재의 이유를 찾아 고집스런 학창시절을 보냈다. 피아노학원 선생님인 어머니가 피아노를 배우라고 권했고, 형은 팝페라 가수였지만 음악을 할 생각은 못했다. 대신 비와이는 중학생 시절 꿈을 찾아다녔다.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서 본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는 법칙이 감명 깊었다. 꿈을 이뤄보고 싶은데 꿈이 없었다. “적성검사에서 음악 관련 일이 적성에 맞다고 주로 나왔던 고 1때”, 마침 힙합에 빠져들었다.

“래퍼가 신이 주신 꿈이라고 확신했고, 그 이후로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어요. ‘데이 데이’ 가사 속 거짓말쟁이는 중학생 시절 저죠. 음악을 좋아했음에도 두려움 때문에, 잘생기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고 핑계대며 스스로 속이려 들던 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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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5’에서 공연하는 모습. [Mnet]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는 부모의 권유에도 고교 시절 내내 친구 씨잼과 함께 랩만 썼다(씨잼은 이번 ‘쇼미더머니’의 준우승자다). 하고 싶은 말을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했다.

그는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가 돈 잘 번다고 자랑하는 랩을 해서 논란이 됐지만 내게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그들의 솔직한 랩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타고난 것이라면 나머지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입술에 랩이 배어들어 저절로 말할 때까지 반복해서 외웠다. 무대 위의 그가 유독 멋져보이는 것도 “머리로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입으로 하는 랩을 구사해서”라고 자평했다.

그는 현재 청운대 베트남어학과 3학년 휴학 중이다. 이번 ‘쇼미더머니’로 어릴 적 꾸던 꿈을 다 이뤘다고 했다. 신념과 신앙을 대중에게 들려주고, 온라인 음원 차트 1위도 하고, 좋아하는 뮤지션 시아준수와도 함께 작업하고…. 이제 다음 꿈은 미국 진출이라고 했다.

10년 뒤의 모습을 물었더니 “지금 국내 음원 차트 1위를 하고 있으니 그때는 빌보드 1위쯤 하지 않을까. 켄드릭 라마가 그래미어워즈에서 ‘수상자 비와이’라고 소개하고. 싸이 형도 ‘강남스타일’로 빌보드 차트 2위를 했는데 나라고 못하겠나”고 호기롭게 답했다. “사람들이 이런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비와이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고.”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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