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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의성 개발하는 다양한 교육을|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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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 나라는 1인 당 GNP 2천 달러를 넘어 성숙사회로 가는 길목에 있다. 물질적 성장에 걸맞는 정신문화와 사회제도 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성숙사회란 무엇이며 이를 지향하기 위해 각분야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본사는 「성숙사회로 가는 길」을 금년 캠페인 주제로 삼고 각계 전문가들의 좌담회, 또는 기획·심층 취재를·통해 구체적 실천방안을 연중 장기 연재할 계획이다.
성숙사회가 무엇이 우리 사회가 성숙사회인가, 우선 성숙사회의 의미를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비록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아직 많겠지만 국민들이 어딘가 들떠 있지 않고, 대개의 경우 있을 것이 있을 자리에 있고, 개인생활·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서 기본적인 질서가 자연스럽게 지켜져서 비교적 명랑한 풍토가 관찰되며,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양질의 교육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실시해서 국민들의 건전한 가치관과 의식수준이 높고, 부자간·사제간·상사와 부하직원간의 그리고 많은 인간관계속에서 신뢰와 이해·관용과 격려 그리고 인내와 양보의 미덕이 널리 생활화된 사회, 그리고 각종 제도나 법규가 대중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통사람들에게 편리와 복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제정되고 운영되는 모습이 보편화되어 있는 사회를 성숙사회라고 해두자. 더 줄여본다면 「비록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고 또 불편한 것이 더러 있더라도 살맛이 난다든가 삶의 보람 같은 것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를 성숙사회」라고 정의해 본다.
우리사회는 그 동안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성숙해지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단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괄적으로 말해서 오늘의 우리사회를 성숙사회라고 규정하기에는 거리가 먼, 어두운 국면들이 많다.

<분수 모르는 사치 등 어두운 국면들 많아>
우리들은 쉽게 흥분하고 매사에 성급하다. 무엇엔가 들떠 있고 또 분수를 모르고 냉철하지 못한 경향을 보이고 있음이 어디서나 쉽게 관찰된다. 목전의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하여보다 많은 사람을 위한 보다 더 큰 이득을 외면하는 사례, 일차적인 목적과 본질적인 것이 수단적인 것·부수적인 것에 밀려나는 사례가 많다.
대여되지 않은 빌딩들이 즐비하지만 도시의 콩나물 교실은 여전하며 외채는 늘어나는데 외제선호 경향은 줄어들 줄을 모른다. 국토와 자원은 유한한데 인구증가율은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불신사회, 교통사고 으뜸 국, 입시지옥, 취업난 등은 우리사회의 대명사처럼 계속 따라다닌다.
또 정가와 학원 등을 빈번히 마비시키는 회오리바람의 핵이 되는 흑백논리, 그것이 결과하는 엄청난 낭비, 이에 따르는 국민사기의 저하면상 등은 오늘의 우리사회가 성숙지향형 사회일망정 아직 성숙사회는 아니라는 것을 지지하는 단면들이다. 그러면 본 좌담회의 제목인 성숙사회와 교육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교육은 한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상태에 있느냐를 따져보는 하나의 준거가 되는 동시에 그것은 성숙사회로 가는 하나의 길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성숙사회는 그에 걸맞는 교육을 갖고 있을 것이며 그러한 교육이 있었기에 성숙사회로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결코 성숙사회가 먼저 있고 그것에 종속해서 성숙교육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숙사회와 교육의 관계를 이렇게 볼 때 성숙사회의 교육이 어떤 것인가를 분석해보고 그 의미를 음미해 보는 얕은 교육입국을 내걸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숙사회의 교육의 첫 번 째 특성은 그 공신력에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오랜 경험 끝에 학교(또는 학교제도)가 졸업생들에게 부여하는 자격을 믿는 것이다. ××학교, ××학과의 졸업장은 능력이나 인간됨의 보증서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신력의 형성은 학교가 최선을 다해서 학생을 가르쳐서 졸업생의 품질을 마치 상품을 내놓듯 엄격히 관리하는 전통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다양한 학제가 융통성 있게 운영되며 학교의 수업체제는 다양한 학생에 대한 다양한 서비스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다리형의 단순한 학제가 아니라 능력과 소질·흥미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보다 의미 있는 교육을 독특하게 받을 수 있도록 선택의 길이 다양한 복선형학제를 운영하면서 횡적 이동이 허용되며 또 일의 세계와의 연계도 고려되고 있어 공부하다가 일하고 일을 하다가도 형편이 피면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학제의 운영을 뜻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능력·적성·흥미에 따라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가지고 학생을 대한다.
모든 학교에서 영재는 영재대로, 학습부진아는 부진아대로 그들에게 알맞는 프로그램과 방법을 서비스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업체제를 운영한다.
셋째는 각급 학교의 교육은 그 나름대로 학생에게 무엇인가 알차게 가르쳐 그 교육이 마지막교육이 돼도 쓸모 있는 인간을 배출한다는 것이다. 기초교육·학습방법의 학습·인간교육·탐구능력·자율적 학습태도 등을 철저히 가르치면 국민학교나 중학교만 나와도 일의 세계에서 적절히 적응할 수 있고 계속 자학자습을 할 수 있는 기초가 습득되는 교육을 뜻한다.
넷째는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이 우리보다 빠른 시기에 변별되어 후기 중등교육 단계에서는 이미 진로가 설정되고 그것과 밀착된 교육을 실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학력관리와 적성 변별업무에 있어서의 학교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또 학부모가(학생 스스로도)자기 자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며 어디서나 알맞은 곳에서 보람있게 일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중시한다. 대학을 못 가는 것, 특정 대학을 못 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으며 「원통하게」생각하지도 않는다.
다섯째는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특히 초·중학교)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목표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길, 즉 질서의식, 협동심, 다른 사람의 의견을 성실히 듣고 존중하기, 그리고 개성신장, 창조성, 자아실현 등등으로 표현되는 덕목들의 생활화·인격화를 실천하는 일이다.
양과 기회의 팽창에 따르지 못하는 질의 문제, 과밀학급, 입시압력 등등의 압력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학교장이하 전 교직원과 학부모의 교육관이 학교(특히 초·중학교의)의 본질적 기능과 일차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지하도록 하고 있으며 교육행정 당국의 학교평가의 기준도 여기에 맞추고 있어 학교교육의 생산성과 공신력을 높이는 토양 외에서 학교가 관리·운영된다.

<다른 사람 의견 존중 애정 어린 보호 필요>
여섯째는 각급 교육행정 단위는 그 나름대로 자치권·자율성을 부여받고 있어 주어진 범위 안에서 자기들이 교육을 계획하고 실천하게되므로 진지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교육은 자연 학생이나 지역사회의 필요를 교육현실에 반영하게 되므로 그만한 교육은 구체적이고 효용성이 높은 것이 될 가능성이 크며 다양하고 독특한 접근이 개발되기도 한다.
끝으로 그들의 교육환경의 풍요함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쾌적한 공간, 가정에서의 생활과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설과 편리가 세심하게 배려돼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학교는 교실도 교육과정도 막혀있지 않고 널리 열려 있다 하여 스스로를 열려있는 학교(open school 또는 class room)라 부르기도 한다. 요약컨대 성숙사회의 학생들은 비교적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인격적으로 존중받아가면서 기성세대들의 정성과 애정 어린 가르침과 보호를 함께 받으면서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숙사회에로의 길목 역할을 해야 할 우리의 교육이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어떻게 개선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인가? 우리 나라에서 학교교육은 하나의 거대한 체제를 운영하는 일이다. 천만명의 학생을 만여 개의 학교에서 30만 명의 교육자가 동원되어 학부모 지출 분을 포함하여 3조원을 상회하는 예산이 투입되는 한국교육은 한마디로 엄청난 체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정부 예산의 약 5분의1, GNP의 4%에 해당하는 막대한 예산이다(이것을 학생수로 나눈 단위교육비의 국제비교에서 우리는 국민 개인 소득 5백 달러 내외의 국가와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지만).
이 거대한 한국의 교육체제가 기대수준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은 국민전체가 안타까워해야 할 불행한 사태임에 틀림없다. 무엇 때문인가?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교육관, 보편화된 평등의식, 어느 틈엔가 만연된 이기주의·개인주의, 한국인 특유의 체면의식·형식주의, 가정과 사회의 교육적 기능의 쇠퇴, 그리고 정책입안과 결정과정의 성급함, 넉넉지 못한 교육재정 등 대부분의 교육외적·부정적 변수들에 의해 포박되어 그 큰 몸집이 힘을 못쓰고있는 상태가 오늘의 한국교육이다.
이러한 문제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처방은 무엇인가? 다른 많은 나라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특히 교육문제가 이미 학교나 문교부의 역량이 미치기 어려운 영역에로 확대되고 있어 그것은 동시에 정치문제·사회문제·경제문제이기도 하다. 중요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정치적 결단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거대한 투자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또 이 모두가 교육자·학부모·사회시민의 가치관이나 의식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은 종합적이며 근원을 다스리는 내과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대학 입시제도와 고교평준화 제도의 문제를 교육문제의 핵으로 이해하고 이 두 가지 문제의 해결을 한국교육 문제의 전부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단순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학부모·교육자·일반성인 등 기성세대들이 그들의 잘못된 아동관·교육관·사회관으로부터 해방되는 일이다.
내 자식·내 분신·내 핏줄로 대변되는 좁고 이기적이며 종적인 아동관으로부터 우리 모두의 2세들이며 그들은 독립된 인격체이며 남의 자식도 똑같이 소중함을 인식하는 아동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은 자녀들이 그들 나름대로 자기의 소질과 적성에 따라 각자의 삶을 보람있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내 자식·내 핏줄에서 우리의 2세로 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부모들은 마치 자기들이 먼 훗날 자녀들과 같이, 또는 그들을 대신해서 살 것처럼 자녀의 소질과 미래의 인생을 학부모가 결정하려고 간섭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잘못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격동기·전쟁 등을 거치면서 습득한 불안에 대비하는 기성세대의 습관이다.
그들이 살 미래 사회가 과거처럼 불행한 격동기를 되풀이 할 가능성은 차츰 희박해져 가는데도 부모는 자기의 경험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며 몰지각한 교육자들이 거기에 편승한다.
다음은 부족한 교육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원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일이다. 국·공립뿐만 아니라 사립에까지도 국고보조를 해야하는 교육재원의 중앙화 현상은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 국민의 뜨거운 교육에너지가 식지 않는 한 학부모의 부담능력·가치관, 그리고 적절한 유인체제의 개발에 따른 교육재원의 다양화 방안은 개발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높은 교육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방법일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는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이 미래에 대비하는 교육,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인간상의 육성을 중심으로 재편성되고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정책과 행정을 집중시켜야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구조·산업구조도 곧 고도화·정보화 될 것이므로 앞으로는 모방만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아동들의 창의적 잠재력을 일찍부터 계발하고 자주적 역량, 높은 도덕성, 협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태도, 탐구능력, 학습방법에 관한 학습 등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보의 생산관리·이용능력의 기초적 자질을 키워주고 지역적 또는 우주적 정보의 네트워크와 더불어 사는 태도와 기술의 교육을 빨리 학교교육에 반영해야한다.
대표집필 신세호씨
참석자 서명원(교육개혁심의회 위원장) 김종서(서울대 사범대 교수) 배종근(동국대 사범대학장) 신세호(한국교육개발원 부원장)
때:14일 하오 2시 장소:본사 B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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