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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교육카페] 인성교육법 1년…“바른 아이로 키워주세요” 이젠 부모들이 요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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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오늘(21일)은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꼭 1년 되는 날입니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 국회가 만장일치로 제정한 법입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습니다. 이런 실태를 보도한 ‘인성교육법 시행 1년’(7월 19·20일자 14면) 기사에 대해 여러 학부모가 e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대부분 “학교 인성교육이 절실하다. 하지만 잘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세 딸 어머니의 한 사연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학생인 큰아이와 초등학생인 막내 사이의 교실 환경이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10년 사이 학교는 밥 먹고 잠자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선생님들도 열정을 잃었고요.” 어머니는 변화된 교육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당연히 학원에서 배울 거라 생각해 수업도 대충하고 아이들은 사교육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죠. 올바른 친구 관계, 사제지간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죠.”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학부모들도 비슷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는 이모(41)씨는 “제 자식을 왕자님·공주님으로만 키우는 가정에선 한계가 있죠. 학교에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6학년 딸을 둔 이모(39·여)씨도 “솔직히 학습적인 면은 학원에 더 기대하죠. 학교에선 사회성과 감성 같은 인성교육이 많아졌으면 합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제가 만난 학부모들뿐이었을까요. 본지가 여론조사 업체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학부모 500명을 조사해 보니 학부모의 66.4%가 인성교육을 통한 인격 함양이 진로·진학 대비(25.4%)나 교과 학습을 통한 지식 습득(8.2%)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바른 품성을 갖추고 타인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갖춘 아이로 키워달라는 것이 학부모들의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선진국은 교육 목표를 ‘학업’이 아니라 ‘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한 초등학교에선 수업 시간에 ‘싸우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는 법’과 같은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지혜를 배웁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부터 국·영·수 등 교과목 중심으로 짜여 있던 교육과정을 타인과 의사소통, 갈등 해결 등 역량 중심으로 바꿨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단순한 지필시험이었던 학업성취도평가(PISA)에 ‘협업적 문제 해결력’을 추가했습니다. 21세기엔 ‘인성이 진짜 실력’이 되는 추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여전히 입시와 교과목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의 바람과 세계적 흐름은 이미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동안 입시 위주 교육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교육부와 학교는 학부모 탓을 합니다. 부모들이 원하니 국·영·수 중심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단 이야기죠.

그렇다면 진정 부모가 바라는 것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인가요. 바른 마음씨를 갖고 친구들과 함께 잘 어울리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닌가요. 자녀들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고 교육부와 학교에도 요구해야 합니다. ‘진짜 실력’인 인성을 키우는 교육을 해달라고 말이죠.

윤석만 교육팀장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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