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부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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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밀리어네어」는 미국 사람들의 오랜 꿈이다. 소설에도, TV 드라마에도, 노래에도 밀리어네어 한번 돼봤으면 하는 얘기가 예사로 나온다. 백만장자가 되는 꿈이다.
바로 그 미국인의 꿈이 담긴 「밀리어네어」라는 말에 요즘은 「보통」(ordinary)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세상이 되었다. 신년에 나온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지는 그것을 특집으로까지 다루었다.
미국엔 지금 백만장자가 1백만명도 넘게 있다. 「보통 백만장자」라는 말이 나오게도 됐다. 1백 가구의 한 가구 꼴이니 말이다.
이들의 생활 모습을 한번 들여다보자.
-『밀리어네어란 직장을 훌훌 털고 나와 호화생활을 하며 걱정과는 담쌓고 지내는 사람들.』
미국의 「스코트·위트」라는 저술가는 이런 말을 한 일도 있었지만 요즘의 밀리어네어들은 천만의 말씀이다.
할리우드 스타보다 시골 세탁소주인을 닮은 사람들, 30년을 두고 주 엿새씩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들, 유별나지 않은 수수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 훈제 칠면조 고기 대신 감자와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 「레이건」같은 인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시골티가 줄줄 흐르는 사람들. 이것은 유 에스 뉴스 지의 묘사 그대로다.
그러나 이들이 전 미국 사유재산의 3분의 1, 전 주식의 60%, 이문이 있는 자산의 30%, 부동산의 9%를 손에 쥐고 있다.
도대체 무슨 수로 밀리어네어가 되었을까.
첫째, 미국 백만장자의 80%는 중산층 내지는 근로자 출신이다. 픽업 트럭을 타고 도너트를 먹으며 정치 따위는 남의 일로 치고 가령 부동산 투자로 소리 없이 돈을 번 무리들.
둘째,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다. 우선 학력 명세를 보면 15%가 고졸이하, 63%가 대 중퇴. 이들의 85%가 자수성가형 자영업을 하고 있다. 집을 지어 팔거나 가게를 갖고 있다.
셋째, 충실한 가장들이다. 대부분이 바람을 피우는 남편도, 이혼한 가정도 아니다. 이들은 또 교외 조용한 곳에서 산다. 자동차는 미국산으로, 시계는 이름 없는 브랜드로, 쇼핑은 보통 상점에서-.
넷째, 자신을 결코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40년째 한가지 옷만 입고 지낸 70세의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자기 재산을 끝끝내 숨겨 놓고 산다. 그 70 노파는 지금도 집 손질을 손수 한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부는 이처럼 건강하고 건전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미국의 진짜 저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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