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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당 100㎜ 폭우에도 걱정 없는 도심 ‘인공 만장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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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10면

1 서울 양천구의 빗물 저장 터널 공사 현장. 발파작업에서 나온 돌조각을 중장비가 운반하고 있다.

2 빗물 터널 공사 현장 입구. 지름 8.5m에 깊이가 40m에 이르는 이곳 수직갱을 통해 덤프트럭과 중장비 등이 투입됐다. 박종근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과 강서구 신월동 땅속에 ‘인공 만장굴’이 뚫리고 있다. 폭우로 인한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터널로 국내 최초다. 총 길이 4.7㎞, 지름은 5.5~10m다. 제주도 만장굴(8.9㎞)에 필적할 만한 규모다. 폭우를 대비해 평상시엔 비워둔다. 장마철을 맞아 중앙SUNDAY에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을 둘러봤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과 목동 빗물펌프장 사이 공영주차장. 안양천에서 가까운 이곳에서는 작은 크레인이 땅속 발파작업에서 나온 돌 조각을 부지런히 끌어올리고 있었다. ‘신월 빗물 저류 배수시설’이라고 적혀 있는 공사현장엔 지름 8.5m의 수직갱이 뚫려 있었다. 계단을 이용해 40m 깊이의 수직갱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서쪽 방향으로 터널이 뻥 뚫려 있었다. 지름이 10m인 수평 터널에서는 바위 조각을 실은 덤프트럭이 오가고 있었다. 중장비와 환기장치의 굉음이 요란했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의 이용길 공사부장은 “터널 공사장에는 덤프트럭 3대와 돌을 옮기는 페이로더 3대, 굴착작업을 하는 점보드릴 1대 등 장비로 24시간 작업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내년 말 완공 예정, 현재 공정률은 34%터널 굴착은 전체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위쪽 반을 먼저 발파해 뚫고, 그 다음 아래쪽 반을 마저 발파하는 식이다. 현재 상부는 880m, 하부는 840m를 뚫은 상태다. 주로 도로 아래를 뚫지만 건물 밑을 지날 때도 있어 하루에 두세 차례 발파로 2~4m씩 앞으로 나아간다. 굴착작업은 이곳 외에 다른 5개 수직구에서도 동시에 진행된다. 현재 공정률은 34%라고 한다.


김민수 현장소장은 “터널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발파작업 후에는 다양한 지보재를 설치하는데 3m 길이의 철심(록 볼트)을 암반 속에 박아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을 가두는 곳인 만큼 터널 아래쪽까지 방수시트를 까는 완전 방수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이곳 시설은 오목교역에서 신월동 신강초등학교 사이 3.6㎞ 구간에 설치되는 지름 10m의 빗물 저장터널(저류배수터널)이 핵심이다. 저류배수터널에는 32만㎥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50m 수영장 160개 분량의 물이다. 또 신월5동에서 신강초교 사이 877m와 경인고속도로 신월인터체인지 부근 219m에는 빗물을 끌어오는 지름 5.5m의 유도터널이 설치돼 하수관과 연결된다. 수직구는 빗물이 흘러드는 수직구 3개, 환기용 수직구 1개, 유지·관리 수직구 1개 등이다. 비가 그친 뒤 빗물을 퍼올려 서남물재생센터(하수처리장)로 보내는 유출 수직구도 있다.


이 빗물터널 사업은 2010년 9월 21일 수도권 지역 기습폭우를 계기로 추진됐다. 그날 서울에는 시간당 90㎜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에 내린 비의 양이 300㎜를 넘었다. 이로 인해 양천구·강서구 15개 동(洞)에서 6000여 건물이 침수됐다. 10만여 명이 직간접적으로 침수 피해를 봤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 이 지역은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됐다. 2012년 5월 빗물저류 배수시설 추진계획이 수립됐다. 설계와 수리모형실험 등을 거쳐 2013년 5월 공사가 시작됐다. 총사업비는 1380억원이 투입된다.


김 소장은 “땅속 하수관을 더 큰 것으로 교체할 경우 토지·건물 보상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상에 빗물저류시설을 설치하기에는 부지 확보가 어려워 지하에 빗물 터널을 설치하는 것으로 정해졌다”며 “내년 말 공사가 끝나면 양천구·강서구 일대 상습 침수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3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폭우, 시간당 100㎜의 폭우가 쏟아져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콘크리트 포장이 홍수 부추겨도시 홍수 방지를 위해 이런 대규모 토목시설이 들어서는 이유는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때문이다. 지구 전체가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와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중부지방의 경우 1973~94년 사이에는 하루 강수량이 150㎜인 날이 연평균 3.5일이었으나 95~2012년에는 9.6일로 늘었다. 서울에서 시간당 30㎜의 폭우가 쏟아진 날도 70년대에는 연평균 12일이었지만 2001~2010년에는 34일이나 된다. 그만큼 국지성 집중호우가 늘어난 셈이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70~80년대에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하루 300㎜씩 쏟아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태풍의 진로가 과거보다 서쪽으로 치우치면서 태풍이 몰고온 비구름이 수도권에 많은 비를 뿌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추세가 10년 단위의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추세로 굳어질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시가 콘크리트로 덮이는 면적이 늘어나는 것도 도시 홍수의 원인이다. 서울의 경우 2014년 기준으로 전체 면적의 46.6%가 불투수(不透水) 지역이다. 특히 도심부는 불투수 면적이 90%를 넘어 대부분의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수관으로 몰려든다. 강수량이 과거보다 늘었는데 하수관 규모는 그대로여서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도 홍수 방지를 위해 부심하고 있다. 목동 빗물터널 외에도 관악구 서울대 정문 부근에 6만5000㎥ 규모의 지하 저류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내년 5월 완공 목표인 이 시설은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수를 임시 저장해 도림천 범람을 막게 된다. 이진용 서울시 하천관리과 과장은 “서울시내에는 116개의 빗물 펌프장과 53곳의 유수지가 있지만 기상 이변에 대비하기 위해 추가로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며 “방재시설이 많으면 좋겠지만 예산 때문에 무한정 설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도심지역 상습침수 해소를 위해 2013년부터 전국 각 도시 가운데 하수도 중점관리지역을 매년 10곳 정도씩 정해 하수관을 개량하고 지하에 하수저류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까지 모두 107개 구역에서 진행된다.


한무영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빗물을 한 곳에 모아 처리하려 들면 비용이 많이 든다”며 “1년에 며칠인 집중호우 기간을 위해 대규모 시설을 짓기보다는 도시를 작은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별로 알맞은 빗물 저장시설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작은 구역별로 빗물을 모으면 정원수나 화장실용수 등으로 활용해 물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다.


이와 관련, 환경부는 ‘물 순환 선도 도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투수성 포장을 늘리고, 건물 옥상이나 하천변에 나무를 심어 폭우 때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을 줄이는 내용이다. 강복규 환경부 수생태보전과 과장은 “물 순환이 잘 이뤄지면 홍수 방지와 하천 수질 개선은 물론 녹지공간 확보를 통한 경관 개선, 평상시 하천 유량 확보 등 ‘1석4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달 ‘물 순환 선도 도시’로 선정된 광주·대전·울산·안동·김해 등 5개 도시에 대해 내년부터 4년간 총 1231억원 규모의 시범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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