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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홀로 ‘콩쿠르 사냥’ 다니는 김봄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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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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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소리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최근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 2위와 청중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스튜디오로 온 그녀, 혼자였다.

그간 연주자가 홀로 스튜디오로 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부모나 매니저가 함께 오는 게 다반사였다.

특이한 경우이기에 혼자 온 이유를 물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다녔어요. 엄마는 동생들을 돌봐야 했죠. 당시엔 친구 엄마들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혼자 왔니?’란 물음이 항상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 말 끝에 옆에 있던 취재기자가 거들었다.

“바이올린 등에 메고 저렇게 혼자 전 세계로 다닙니다.”

취재기자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사진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까요?”

“콩쿠르 사냥꾼으로 해주십시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그녀가 까르르 웃고는 한마디했다.

“그런데 콩쿠르 사냥꾼이란 표현이 좀 그래요.”

수많은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게 사실이지 않냐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사냥꾼이란 표현이 상금을 타러 다닌다는 느낌이잖아요. 굳이 사냥꾼이라고 하자면,

제게 그 의미는 여러 나라에서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사냥하러 다니는 거예요.”

그녀에게 콩쿠르는 연주 기회를 얻고 또 나아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의미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조명 아래에 선 그녀의 쇄골에 동전만 한 흉터가 보였다.

굳은살이었다.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홀로 세계를 떠돌며 연습을 거듭한 결과물이었다.

그 흉터가 보이게끔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흉터를 가린 목걸이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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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름답게 보이고 싶게 마련이다.

하나 세상엔 거칠고 흉해서 더 아름다운 게 있다.

연주가로서의 삶이 만든 흉터, 내 눈엔 목걸이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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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를 빼는 순간 그녀의 왼손이 보였다.

손끝이 뭉툭했다.

손가락보다 굵은 손끝, 굳은살이었다.

쇄골 흉터보다 더 또렷했다.

그 손끝에도 김봄소리의 삶이 배어 있었다.

쇄골 흉터에서 손끝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작정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사진을 검색했습니다. 모두 아름다운 사진이던데요.

그런데 진짜 김봄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손끝에 진짜 김봄소리가 담겼네요.

손을 강조해 사진 찍는 건 어떨까요?”

뜬금없는 요청에 그녀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녀가 갑자기 바이올린 현에 손가락을 짚었다.

이왕이면 더 또렷하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게다.

그런 후에 얼굴과 함께 손끝을 보여 주는 포즈를 취했다.

창피해하지 않았다.

당당했다.

뭉툭하고, 터서 거친 손끝,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삶의 증거이기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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