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부는 왜 총리가 물병세례 받았는지를 돌아봐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가 급기야 국무총리에 대한 다중위협 사태로 번졌다. 어제 황교안 국무총리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이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에 내려가 주민 설명회를 하는 자리에서 일부 청중에 의한 욕설과 물병·계란들이 난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설명회는 30분 만에 난장판으로 변질됐다. 황 총리의 양복은 젖었고 흥분한 주민들을 경찰이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황 총리 일행은 군민과 트랙터 등에 둘러싸여 몇 시간 동안 미니버스에 갇혔다.

황 총리와 한 장관은 각각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번 송구하게 생각한다” “이해와 협조를 구하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으나 주민들은 “사드 배치 결사반대” “생존권 보장하라” “북한 핑계 대지 마라” “네가 여기서 살아라”는 등의 비난과 항의가 그치지 않았다.

성주군민들의 분노와 절규엔 ‘하고많은 지역 중에 왜 우리 고장이냐’는 억울함에다 전후 과정의 설명이 없었던 황당함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인체 위해성과 지역 산업의 70%를 차지한다는 참외산업의 위축 같은 생업의 피해 가능성은 직접적인 반대 이유다. 주민들의 저항은 이해할 만하다. 2년 이상 걸린 사드 도입 과정에서 정부는 그저 비밀 유지와 막후 협상, 최종 선택에만 정책 역량을 집중했다. 사드 도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 설득, 갈등 예방, 과정 관리엔 소홀했다. 2008년 정권을 휘청거리게 한 ‘광우병 파동’이 대외 협상만 무겁게 생각하고 국내 설득을 가볍게 여기는 소통 경시에서 비롯됐다는 교훈을 박근혜 정부가 잊었던 것이다.

성주군민의 안타까움은 이해하나 집단적인 위협 행사 같은 일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게 국가와 지역 모두를 위하는 일이다. 총리와 국방부, 행자부 장관 등 관련 부처의 최고위 인사들이 충분한 사후 보완과 대책을 약속하고 있는 만큼 밀도 있는 대화와 협의를 통해 전향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부의 주민 설명회는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열 번 이상이라도 찾아가 최적의 해법을 만들어 내야 한다. 아예 성주군청 안에 유관 정부부처 파견 공무원들로 이뤄진 가칭 ‘사드 민원청취특별반’을 상주시켜 유무상통한 의사소통의 채널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겠다.

성주군민들은 이미 사드 문제의 원인이 됐던 ‘북한 무수단 미사일 화형식’을 했고, 김항곤 군수는 외부 시위꾼의 철저한 차단과 함께 괌의 사드 미군기지 방문 의향을 밝히는 등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 준 바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사드 배치는 한국 정부의 정당하고 적법한 결정이다. 정부는 북한의 협박엔 단호하게, 중국 등의 공세엔 진정성 있는 외교적 대응과 노력을 기울이고 국민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게 안보 위기에서 한국과 한국인이 보여 줄 성숙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