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일일찻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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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4일 낮12시쯤, 서울 관악경찰서 형사계.
스포츠형 머리에 청바지 차림을 한 10대 청소년 3명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울먹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고교생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들은 23일하오 방배동 M다방에서 음란비디오를 보다 끌려온 것.『저는 몰랐어요. 국민학교 동창생에게서 일일찻집 티킷을 사 이날 온 것 뿐이예요』
이들이 산 티킷은 1장에 2천원.
일일찻집을 여는 명목은「불우이웃돕기」.
당초 다방주인에게 낮12시부터 저녁8시까지 다방을 빌으는 조건으로 10만원을 주기로 한 주동학생은 달아나 버렸다.
교외생활지도에 나섰다가 우연히 현장을 보게된 S여중 학생생활주임 이승환교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들이닥쳤을 때 다방 안에선 40여명의 남녀고교생이 시끄러운 음악과 음란비디오에 넋을 잃고 있다가 혼비백산, 도망치기 바빴다.
『학생인줄 처음에는 몰랐어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얘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두었읍니다.』
당시 주방에서 코피를 끓여 주던 다방 여주인은 돈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연행된 3명의 학생들은 자술서를 썼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모들은 경찰에 가정교육의 잘못을 백배 사죄했고 학생들은 훈계방면, 부모들에게 인계됐다.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이 음란비디오를 틀어놓고 시작한 일일찻집. 잘못된 사회풍조가 청소년들의 선행까지 오염시켜 놓은 현장. 좋은 목적에 나쁜 방법이 예사로운 의식구조의 혼란에 신나는 크리스머스캐럴 조차 우울하게 들렸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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