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괴저병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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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내에서 외국인 첫 환자가 발견됨으로써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AIDS(후천성 면역걸핍증)공포, 그리고 피부조직이 썩어 들어가는 증세가 한여름의 식단에 비수를 들이댔던 괴저병 파동.
먼나라의 얘기로만 여겼던 AIDS환자의 국내발견은 동성연애자인 게이(GAY)들에 대한 기피증을 부채질, 게이들이 발붙일 곳이 없게됐다.
또 괴저병 공포는 어패류 기피현상을 불러 파산어민들이 속출했고, 횟집·일식집들의 폐업사태를 몰고 왔으며 그 후유증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AIDS=지난 6월28일 미국인「잉거」씨(53·서울S대 영문과 객원교수)가 연대 의대팀에 의해 환자로 밝혀진데 이어 지난 9월 미8군 병사(24) 1명이 또다시 환자로 발견돼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했고 지난 12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근무 중이던 서울S건설 박모씨(29)가AIDS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져 귀국조치를 당했다.
「잉거」씨는 7월초 미국으로 강제 출국당한 후 샌프란시스코 육군병원에서 입원치료 중 8월15일 사망했다.
「잉거」씨와 동성연애 해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하숙집 아들 성모씨(26)는 그 이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아직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보사부는 성씨에 대한 입국금지조치는 할 수 없어 국내 가족들을 중심으로 성씨의 입국여부를 감시 중.
「잉거」씨와 성씨가 서울에 있을 때 자주 드나들였던 N술집(숭인동) 종업원들에 대한 감염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그 뒤 미성년자 고용 등 위법사실이 적발돼 이 업소는 종로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문을 닫았다.
또 박씨는 국내검사에서도 양성반응이 나타남에 따라 한때 격리수용을 당했으며 면역능력 저하에 대한 정밀검사가 진행 중.
보사부는 박씨가 출국(8월19일) 전 국내에서 미국인·브라질인 등 주로 외국인들과 어울려 서울 이태원의 게이바 등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이미 국내에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보고 박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감염경로를 추적중이다.
이 때문에 이태원의 유흥업소들은 한창 흥청거릴 연말인데도 파리를 날리고 있으며 전업을 서두르는 등 변신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태원의 게이와 게이바들은「박씨 소동」전에도 검찰로부터 철퇴를 맞아 업주16명이 구속되는 파동을 겪었었다.
이때 요행히 법망에 걸려들지 않은 게이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이태원거리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의 정보망을 통해 외국인을 서울로 불러들여 이들을 상대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괴저병=25명의 환자가운데 l2명이 사망함으로써 치명률 48%를 기록, 콜레라 등 1종 전염병의 0.1∼4.7%보다 훨씬 높은 무서운 치명률을 보였다.
그러나 생명을 구한 환자들도 아직 후유증으로 고생하며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퇴원은 했지만 살아있다고 할 수 없어요.』
7월15일 이병에 걸려 서울 강남성심병원에 입원했다가 11월5일 퇴원한 황모씨(48·노동·서울 신대방2동)의 고통스런 호소.
황씨는『해물은 이제 쳐다보기조차 싫다』며 당시의 공포에 몸서리쳤다.
서울 4대문 안에서 내로라 하고 호경기를 누리던 H일식집도 이병 소동으로 하루아침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아픔을 안았다.
전국 피조개 생산량의 90%를 담당하고 있는 진해수협 조합장 장민호씨는『당시의 피해는 제쳐두고라도 국내판매망 확보를 위해 4월 개설했던 서울 청량리수산시장의 피조개 직매장을 연말까지만 운영하고 철수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7월21일부터 10월110일까지 휴업했다가 다시 문을 열긴 했으나 매상액이 종전의 절반수준인 40만∼50만원밖에 안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임수홍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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