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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외화 비교육적 장면 많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교회앞에서 격분한 지구수비대원이 붉은 옷을 입은 침략자 외계인을 주먹으로 때려죽인다. 거기에 다시 권총을 들이대자 동료가 말린다…. 복제인간 소녀가 공원에서 날카로운 뱀 혀를 내돌리며 경찰관을 무참하게 살해한다.
피투성이가 된 경찰관의 시체-. 외계인간 실험실에서 경비원을 무참히 살해하고 도망쳐 나온 복제인간 소녀는 그를 찾아 나선 추적자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어 얼굴 살갗을 벗겨 내린다.
지난22일 방영된 공상과학영화『V』(KBS 제2TV)「천사의 두얼굴」편의 몇 장면.「안방극장의 V열기」로 불릴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너무 흉측스럽고 잔인한 폭력장면이 많아 어린이 심성교육에 나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6살난 딸아이와 함께『V』를 보다가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에 태어난 소녀「엘리자베드」가 파충류로 변하는 장면이 너무 끔찍해 TV를 껐다는 고성욱교사(서울 계성국교)는 다음날 반 어린이를 상대로『V』시청 실태를 조사했다.
60명의 학생 중 57명이 이를 보았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이「무섭긴 하지만 재미가 있어서 본다」는 반응을 보였다. 월요일 하오에 읽어본 일요일의 생활을 적은 학생들의 일기중 80%정도가『V』를 본 것을 쓰고 있었는데 몇몇 학생들은「왜 빨리 외계인을 박살내지 못하는가」「외계인을 싹 처치해 버려야 한다」고 적고 있었다.
이에대해 고교사는『총기로 무참하게 살육하는 폭력과 끔찍한 장면 등 크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이 섬세하고 약한 자극에 전혀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세아이를 둔 가정주부 이상희씨(서울 화양동)는『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도 일요일 하오6시면 집에 들어와「V」를 볼 정도로 아이들이 즐겨본다』며『아이들은 과학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너무 징그럽고 사람을 해치는 장면은 삭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딸아이가「V」를 보고 음식물을 토했다』며 걱정하는 TV바로 보기 운동회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전형적인 미국식 폭력물을 여과하지 않고 일요일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방송자세를 나무라는 사람들도 많다.
차경수교수(서울대·교육학)는 『서부영화로 표출되던 미국사회의 폭력이 최근에는 우주 과학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잘 맞지 않는 폭력물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방영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차교수는 또『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감각적이고 호기심을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속편까지 들여와 계속 방영하는 상업주의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평론가 신규호씨도『폭력이 난무하는 미국영화를 속편까지 들여와 방영해 이를 즐겨보는 어린이들의 심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어린시절부터 미국식의 문화에만 길들여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지난8월 두시간짜리 5부작으로 방영된『V』가 인기를 끌자 KBS는 그 속편 50분짜리 19편을 들여와 지난10월27일부터 연속 방영해오고 있다.
어린이들의 과학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일면도 있지만, 심성발달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서 너무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방영을 재고해야 된다는게 많은 교육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양재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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