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물리학계의 선구자 고권영대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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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문에 대해 솔직하라.』
한국물리학의 선구자로 1천여명의 후학을 길러낸 권영대박사(77) 가 언제나 하던 말이다. 권박사가 23일 갑자기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제는 비리가 허여진 제자들의 발길이 서울동숭동 빈소에 끊일 줄 몰랐다.
1908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한 권박사는 어릴적부터 전재소리를 들으며 26년 제일교보
(현 경기고), 30년 일본성 성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바로 일본북해도 제국대학 이학부에 입학, 광학을 전공하는 물리학도가 됐다.
38년에 송도중학교 교원으로 옮겨 근무하다 46년 국립서울대가 개교됨에 따라 문리대 부교수로 발탁됐다.
어려웠던 시절 권박사는 명국과학의 미래를 어깨에 메고 입학한 젊은이들을 학문의 길로 염하게 이끌었다.
현재 2백여명의 박사급 중진과학자들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학문은 끝이 없다. 아는체 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라』는 그의 채찍질 덕이었다는게 빈소에 모인 제자들의 의견이다.
그가 길러낸 김정흠(고려대)·이상수 (과학기술원) ·김철수·현정애 (서울대) 박사등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국내 과학계의 반석이 되고있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로 꼽을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영국브리스톨대에서 자신이 촬영한 핵건판을 하루8시간씩 분석해 한달 만에 목적한 소립자의 흔적을 찾아내는 열성을 보였으며 문리대 재직 중에는 제자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라 자주선의 강도 등을 직접 측정하기도 했다.
권박사는 청년 서울대를 정년퇴임, 명예교수로 물러난 후 학술원 원로회원으로 위촉됐다.
그는 마지막까지 본부가 충남대덕 연구단지로 이전, 썰렁해진 에너지연구소 사무실에 매일 출근해 연구원들을 격려해봤다.
외아들 오석씨 (37) 는 아버지를 따라 광학을 전공, 미록히드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다.<장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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