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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4)-제84화 올림픽 반세기(33)|고도에 다시 핀 성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찬란한 고대문화가 살아 숨쉬는 영원의 도시 로마-이곳에서 피어오른 올림픽의 성화는 정말 뜻깊은 것이었다.
고대 올림피아제전이 이교도의 종교행사라 하여 철폐시켰던 로마제국이 1천6백여년동안 역사의 장막에 묻혀있던 올림픽 이념과 재회한 것이다.
몬테마리오산 밑에 건설된 10만명을 수용하는 장엄한 울림픽스타디움을 비롯, 각 경기장은 일찌기 독재자 「뭇솔리니」에 의해 평사진이 마련됐었다. 올림픽스타디움과 티베르강을 사이에 둔 선수촌은 아름다운 다리를 세워 연결시켰다.
이름난 유적지에 이르는 골목마다 경기장이 자리잡았는데 2천년전 레슬링 경기가 탄생한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 회당은 레슬링 경기장이었고 체조경기가 열리는 칼라칼라경기장은 옛 목욕탕 유적지에 천장을 가설한 것이었다.
특히 로마시청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에 이르는 마라톤 코스 아피안 웨이는 관광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만큼 인상적이었다.
이같은 시설을 완료하는데 로마는 4백억리라(약3천만달러)를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별로 재정이 넉넉지 못한 이탈리아 정부는 도도 칼치오라는 일종의 올림픽 복권을 판매해 재원을 거의 충당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즉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인의 심리를 이용, 축구 승패맞히기 복권을 50리라씩에 팔아 당첨자에게 5억리라의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1년동안 기금을 모았다는 것이다. 이 축구 복권엔 이탈리아인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수많은 관광객이 참여했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말 그대로 올림픽 기간에 로마엔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자동차·배·비행기로 몰려왔다. 이때문에 로마 시내는 최악의 교통난과 숙박난이 겹쳐 관광객들이 곤욕을 치렀다. 교회는 물론 @수녀원까지 부족한 잠자리를 위해 방을 내놓을 정도였다.
정치색으로 오염됐던 멜번대회와는 달리 로마올림픽에선 정치문제가 휴전상태였다. 동· 서독은 양쪽 국기의 공통색인 검은색· 붉은색·노란색의 3색 바탕에, 오륜마크를 그려넣은 국기를 들고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국가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멜번대희에 처음 단일팀으로 참가한뒤 동독이 별도의 국기를 마련할 움직임을 보이자 IOC가 개입, 중립의 공통기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동·서독은 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뒤 냉전을 계속하다 동경 올림픽 (64년)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결별하게된다.
한편 중공은 58년 자유중국 축출을 요구하며 IOC를 탈퇴, 올림픽 무대를 떠났고 자유중국은「차이나」 란 국호를 잃은 대신「대만」 이란 이름으로 로마올림픽에 단독 출전했다.
또 남· 북한문제는 단일팀 구성을 위한 토의를 연기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8월25일 하오 「조반니·그롱키」이탈리아 대통령의 개회선언으로 로마올림픽은 막이 올랐다. 참가선수는 85개국 8천여명.한국은 최륜칠기수를 앞세우고 20번째로 입장했다.
처음 채택된 오륜가가 울려퍼지고 6천마리의 비둘기가 로마창공으로 날아올랐다. 로마시내의모든 사원에서는 일제히 총을 울려 올림픽을 축하했다.
개막식 전날 참가선수들은 성베드로 광장에 모여 교황 「요한」23세가 집전한 미사에 참례, 교황으로부터 강복을 받음으로써 로마올림픽의 추억을 더욱 뜻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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