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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맹 줄이기…고령층 대상 쉬운 서비스가 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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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공인인증서? 그건 안 해. 보이스피싱 당할까봐 무서워서. 힘들어도 은행에 가서 직접일 봐야지.”

50대 이상 정보화 수준 77점
장애인·저소득층 보다 낮아

지난달 22일 서울 명동주민센터에서 만난 임기석(63) 씨는 인터넷뱅킹에 대해 묻자 손사래를 쳤다. 서울 중구청이 무료로 하는 ‘스마트폰 기초 교육’을 받으러 온 임씨는 “이걸 배워서 카카오톡을 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쇼핑과 은행거래는 물론 보험 계약과 각종 예약까지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다 되는 디지털 세상. 오프라인과 비교해 거의 모든 거래가 빠르고 편리하고 저렴해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디지털문맹자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리고 이 중 상당수는 고령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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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5년 통계에 따르면 50대 이상 장노년층은 정보화 수준이 전체 국민 평균을 100으로 놓았을 때 77.4에 그쳤다. 장애인(86.2)이나 저소득층(87.7)보다 낮다. 정보화기기 접근성에선 장노년층도 95.1에 달했지만 역량(66.1)과 활용(64.1) 수준은 크게 뒤떨어졌다.

스마트폰기초 교육에 참석한 이정희(70)씨는 최신형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운전할 때 빠른 길을 검색하고 싶다”는 생각에 교육을 신청했다. 자동차보험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가입하면 저렴하다고 설명하자 그는 멋쩍게 웃었다. “온라인이 훨씬 싸다더라고. 그런데 할 줄 모르니까. 그냥 설계사한테 비싸게 주고 해야지.”

자동차보험은 온라인으로 가입하면 16~17% 저렴하다. 설계사에 주는 모집 수수료 등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대형 손보사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차보험 가입자 중 60대 이상은 7.8%에 그친다. 은행 창구 거래 수수료는 인터넷이나 자동화기기(ATM)보다 몇 배 비싸다. 타행 계좌로 100만원을 보낼 때 창구는 2000원, ATM은 700~1200원, 모바일·인터넷은 500원이다. 인터넷뱅킹 이용자 중 60대 이상은 8.5%, 모바일뱅킹은 5.7%이다(한국은행). 게다가 은행은 비용 절감을 위해 점포를 갈수록 줄여가고 있다.

디지털문맹자의 소외는 금융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기도에 사는 장모(71·여)씨는 최근 택시를 타기가 힘들어졌다. 예전엔 전화로 부르면 10분 만에 오던 콜택시가 이젠 30분 넘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그에게 “카카오택시를 써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그렇다고 디지털로의 전환을 늦추라고 기업에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고령층이 스스로 디지털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배우도록 인식을 바꾸는 게 해법이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격차해소팀장은 “기업이 역발상을 가지고 고령층 관련 모바일 서비스를 내놓아야 한다”며 “노인층도 ‘디지털이 나와 관계 있다’고 깨우친다면 폭발적으로 이용이 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재성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층이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와 자극을 줘야 한다”며 “정보화사회엔 그것이 바로 기본권 존중”이라고 강조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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