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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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녘 기러기 소리에 잠을깨니 홀로 달 밝은 누대위에 있었다. 언제고 고국을 생각하지 않으랴. 삼천리가 또 아름답구나』
어느 서정시인인들 이처럼 아름다운 시를 쓸수 있을까. 그러나 이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고 안중근의사가 여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지은것이다.
지난 10일 동경 한국연구원의 최서면원장이 발굴하여 공개한 안의사의 이 한시는 『대가법첩』 이라는 한문교본의 여백에 쓴 것이다.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의 정신이 어쩌면 이렇게 맑고 생생한가. 마치 새 생명이 약동하는 것 같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마지막은 그처럼 환한 것인가.
그 시가 쓰여진 「습자교습서」는 일그러지고 볼품이 없는데 안의사의붓글씨는 더 또렷이 살아서 비상(비상)하는 것 같다.
『남자가 뜻을 육대주에 세웠으니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어도 조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뼈를 어찌 선영에다 묻기를 바라겠는가』
이런 대목에서는 한 몸을 국권회복에 바친 뜨거운 민족애와 사형집행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는 한인간의 담담한 심경을 엿보게 한다.
안의사가 1909년 10월26일 만주의 하르빈역두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한후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면서 한 첫말은 『이등은 죽었는가』라는 질문이였다. 그리고는 『코레아 후라』(대한만세)를 몇번이고 외쳤다. 이때 명중탄을 맞은 이등은 수행원들에 의해 그가 타고온 열차안으로 운반되어 침대에 뉘어졌고 그는 브랜디를 청했다. 두잔을 마시고 난 이등은 『누가 쏘았는가』고 물었다. 측근 한사람이 『한국인이 쏘았다』고 대답하자 그는 『바까나 야쓰(바보같은놈)』라고 하면서 마지막 잔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피격된지 15분만이다.
그후 만주 여순형무소에서 쓴 이한시가 어떤 경로로 오늘 동경의한국연구원에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누구의 보관벽이 없었으면 이 시첩도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일본 교과서에 안중근의사가「암살자」 로 기록되었을지언정 형무소에서 보인 고매한 인격과 넓은도량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런일화와 함께 최근에는 당시의 국제정세와 시대상황에 입각하여 오히려 『쏜 사람보다 죽은 자(이등박문)의 죄가 더 많다』는 해석이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 아세아대학 중야태웅교수가 쓴 『안중근』이 그 좋은 예다.
대의에 살다간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간과 국경을 초월하고 있음을 우리는 여기서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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