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의 「장외투쟁」여부가 정국변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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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대화재개의 돌파구가 좀처럼 보이지않는 가운데 신민당과 김대중·김영삼씨의 민추가 개헌추진 1천만 서명운동을 연내에 공동착수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연말정국이 더욱 어수선해질 기미를 보이고있다.
신민당과 야권내에서는 이 시점에서의 서명운동착수가 정부·여당에 대해 적나라한 대결카드를 던졌다기보다 신춘정국에 대비해 장내정치를 보다 야당에 유리하게 이끌기위한 압력수단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야당의 도전자세와 정부·여당의 대응방식에 따라서는 엄청난 사태의 도화선이 될수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잠재적 폭발성때문에 두김씨와 신민당조차도 서명운동의 성격과 전개방향을 설명하는데 무척 신중하고도 조심하는 태도를 보이고있다.
김대중씨는 『현 단계로서는 신민당의 지구당중심으로 제한적인 원외투쟁을 벌여 궁극적으로 원내투쟁을 돕기위한것』이라고 행동반경을 제시했다. 그는 또 『야당의 사전에 의원직 사퇴라든가 등원거부라는 말을 없애야 한다』며 두김씨의 선도가 곧 파국의재촉이 아니냐는 신민당의원들의 의구심을 무마하려 애썼다.
김영삼씨 역시 『서명운동이 여야의 장내대화가능성을 포기하고 전면적인 장외투쟁을 하자는것은아니며 민정당에 2·12총선 민의를 일깨워주자는데 더큰 목적이 있다』며 서명운동이 비폭력투쟁임을 누누이 강조하고있다.
여기에 『어떤일이 있어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이민우신민당총재의 말을 덧붙여 짐작한다면 서명운동이 곧 원내투쟁을 도외시하고 단기적 승부를 겨냥한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신민당의원들과 관측통들은 이들이 설명하는 제한적투쟁성격을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의전개를 불안하게 응시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이는우선 두김씨의 정치적 입장과 서명운동의 성격으로 보아 자칫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데다 야당의 장외투쟁을 보는 여당의 경직된논리와 적은 융통성을 느끼고있기 때문이다. 민정당은 벌써 노태우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의 발언을 통해 강경대응을 분명히 하고있다.
신민당이나 민추는 아직 서명운동을 위한 구체적계획이나 준비없이 일단 운동원칙부터 선언했기때문에 투쟁방법은 지금부터 논의해야 할 형편이다.
다만 두김씨의 언행이나 주변의 움직임을 봐서 대충의 운동계획은 유추할수있다. 그 골자는 △이엄동에 광화문에서 책상펴놓고 서명받을수도 없고, 정부가 그렇게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을데니 △지방조직이 부실한 민추보다는 신민당지구당중심으로 내밀하게 서명을 받고 △여론환기의 필요성이 인정될때는 전국적으로 거리에 나서고 △방학을 이용해 이미 서명운동에 착수한 대학생및 순수재야·종교단체와 연계투쟁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신민당은 당장 당내일부와 여당으로부터 강한 반발을예상하지 않을수없으며 이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쉬운일이 아니다.
먼저 당 내부가 두김씨의 목표에 따라가게끔 단합되어있지 않다. 35명에 달하는 입당과 현역의원들에게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주지않고는 지구당중심의 투쟁에 한계가 있으며 이들에게 위원장자리를 주자면 원외위원장들의 아우성으로 인한 내분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또 어렵사리 배지를 단 상당수 초선의원과 불평불만이 가득찬 입당파 의원이나 두김씨 중심의 계파정치에서 소외된 비주류측이 적극성을 띄지않고 있다.
이들중에는 서명운동으로 개헌추진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가 많고, 개헌의 당위성보다는 신민당의 서명운동이 정국불안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두김씨도 잘알고 있다. 80여명의 신민당의원을 민추상임운영위원에 가입시켰으나 회의때마다 상습결석자가 30여명이 넘고,두 김씨가 서명운동을 앞둔 단합대회성격으로 9일 소집한 오찬에는 신민당소속의원 1백2명중 59명만이 참석했다. 참석자중에도 명백한 비추종자가 섞여 있었다.
이민우총재가 서명운동추진과정에서 어떤입장을 취할지도 주목된다. 예컨대 이총재가 추진방법을 싸고 원내와 원외가 강온으로 맞섰을때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많은 소속의원들이 이총재가 결정적일때 원내를 대변하리라 믿고있으며 정치적 「힘」과 「현실」때문에 두김씨를 따르는 현역의원들이 특히 그런기대를 갖고있다.
이총재로서는 서명운동을 장내 정치의 정상화를 위한 배수진으로 활용하면서 국회에 개헌관계특위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는 방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있는것 같다. 그래서 서명운동은 여야대화진전에 따라 속도와 내용을 달리할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전 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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