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시에 "연극열풍"청소년극 『방황하는 벌들』부산·군산이어 청주서도 초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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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방도시에 청소년연극 열풍이 불고있다.
열풍의 주역은 연극 『방황하는 별들』9월 부산공연, 11월 군산공연에 이어 7일 청주공연에서도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초동의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7일 하오2시 청주시 충북문화예술회관 앞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수십m 줄을지어 2시간뒤인 하오4시에 시작될 동낭청소년 극단의 뮤지컬『방황하는 별들』(윤대성작·김우옥연출)입장시간을 기다리고있다.
『아직 연극을 본적이 없어요』
『청주에는 극장이 없어서인지 연극을 술집에서 해요』
『갈곳이 없어요』
청소년들은 곧 시작될 뮤지컬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밝은 표정이었다.
4시정각-.
9백98석 대강당에 1천3백여명이 들어차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7∼12일로 예정된 청주에서의 첫공연이 시작됐다.
막이오르면 경찰서 보호실.
반항심에서 집을 뛰쳐나온 지영태(고2), 디스코를 추다 걸린 이수형(고2), 혼숙하다 잡혀온 김철진(고교중퇴)과 오정미(고교중퇴), 미팅주선에 정신이나간 윤소자(고2), 비디오다방에서 끌려온 장택수(중3), 술집아가씨 유인자가 등장한다.
처음 얼마동안 객석은 떠들썩했다.
물건구르는 소리, 껌씹는 소리, 잡담등 온갖 소리가 겹쳐 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방음시설이 제대로 안된 엉성한 천장과벽, 낡은 의자의 삐걱거림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곧 청소년관객들은 무대에선 이들 7명의 문제청소년들이 엮어 나가는 대사가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서히 연극에 빨려들기 시작한다.
합창과 춤이 신나게 펼쳐진다.
명멸하는조명, 현란한 로크음악, 묘기에 가까운 배우들의 멋진 브레이크댄스에 관객들은 발을 구르며 좋아한다. 무대위엔 0×와 선다형을 표시하는 숫자판에 불이켜진다.
문교부장관을 상징하는 모형도 천장에서 내려온다.
「우리는 시험지옥에서 살아요/문교부장관님/왜 입시제도는 자꾸자꾸 바꾸나요/학부모님/왜 우리는 공부만해야 하나요/문교부장관님/우리들을 자옥에서 구해줘요….」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대변해주는 배우들의 합창에 흠뻑빠져 극장안은 무대와 객석의 구별없이 마침내 혼연일체가 된다. 무대는 TV에 대해서도 신랄하다.
프로야구·프로축구 무차별중계해요/아 우리는 텔리비전의 포로/아 우리는 텔리비전의세대….(「TV의노래」)
이때는 무대세트로 세워둔 벽을 조립시켜 대형TV화면(가로5m×세로3m)을 만들어 프로야구와 광고를 익살스럽게 보여준다.
『멋져』라는 짧은외침, 어느 구석에서는 『휘익휙-』하는 휘파람소리와 『아악』하는 괴성까지 질러댄다.
이렇게 열광하던 관객들도 문제아들이 하나하나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때는 감동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장내가 숙연 해진다.
막이내리자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이번엔 분장실로 몰러가 배우들의 사인을 받느라고 아우성을 쳤다.
『시원하고 통쾌해요.』
『우리가 하고싶은 말을 다한것 같아요』
『연극이 이렇게 재미있는것인줄 몰랐어요.』
『또 올거예요』
이 연극이 이토록 청소년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날 청소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는것과 청소년들의 감각에 맞는 연츨기법을 사용했다는점을 우선 꼽을수있다.
이 공연을 본 청주고교사 황오연씨(43)는 『교육적인 차원에서도 훌륭하다』며 『교사로서 느끼는바가 컸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만난 작가 윤대성씨와 연출가 김우옥씨는 『현재총인구의 30%가 청소년인데 그들에 대한 소외가 너무 심했다』라며 『앞으로 힘들긴 하겠지만 지방공연을 꾸준히 기획할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작품은 서울에서만 69회 공연에 3만여명이 관람했는데 지난 9월에 있은 부산공연에서는 6회에 8천여명의 관객이, 군산공연에서는 4회에 5천여명의 관객이 각각 몰려들어 지방에서의 반응이 오히려 서울을 앞질렀다.
동랑레퍼터리는 이여세를 몰아 서울앙코르공연도 계획중.
그러나 지방공연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공연장 대관 하나만 보더라도 쉽게 알수있다.
청주의 경우 시설이 낡을대로 낡은 이충북문화예술회관이 술집과 예식장을 제외하고 공연예술을 할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것도 서울중심가에 있는 문예회관대극장과 같은 대관료인 하루18만원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총입장수입의 22%까지 또 거두어간다.
뿐만아니라 겨울에는 엄청난 비용의 난방비까지 공연하는 측에서 부담해야하니 연극무대의 지방확산은 이래저래 어렵기만하다.
실제로 이곳을 연극·음악·무용·국악등 청주의 모든 문화예술단체가 1년간 사용한 기간은 열흘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 기간은 쉬거나 민방위교육장·기업체회의장·시험장으로 쓰인다. <청주=양헌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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