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삼각형 2층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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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32면

저자: 서현 출판사: 효형출판 가격: 1만4500원

건축가 서현의 글은 맛있다. 간결한 논리에 촉촉한 감성을 자유자재로 조려낸다. 큼직한 생각거리를 툭 던지기도 한다. 현미경을 줬다가 망원경도 준다. 전작 『배흘림기둥의 고백』에서 전통건축에 대한 상상력을 유려하게 펼쳐보인 그가 이번에 들려주는 얘기는 집짓기다. 의뢰부터 완공까지의 과정을 오롯하게 담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게 사실 어디 그리 쉬운가. 우선 집지을 땅과 돈이 있어야 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설계해줄 건축가와 설계대로 꼼꼼하게 지어줄 시공자와도 인연이 돼야 한다. 이 삼단 콤보 궁합이 얼마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가 말이다.


이 책이 단순한 가옥 설계 및 시공 보고서가 아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가를 믿어주는 건축주가 있고, 장인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고민과 위기를 극복해내는 프로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뭉클하다.


“답이 아니라 문제를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바다가 보이는 경사가 급한 삼각형 땅에 계단을 싫어하는 사용자를 위한 2층 주택을 설계하시오’라는 과제는 묘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나보다. 건축주의 “바다가 보인다”는 의뢰가 “바다가 보인다!”로 느껴졌으니.


예산과 제작 현실 사이를 맴돌고 있는 각종 문제들은 그래서 그에게는 신나는 도전과제다. 문제의 감춰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찾아내 맞추고 묘수를 찾아 풀어내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심지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대안의 하나는 문제를 없애는 것”이라며 생각의 포인트를 바꿔버리는 대목에서는 ‘이게 바로 창의력’이라며 무릎을 치고 싶었다. 예산 문제로 공들인 디자인이 사라지고 자재가 바뀌는 대목에서 내 일처럼 안타까웠던 것도 저자의 ‘작품 활동’에 어느새 동참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건물 모형을 잘못 만들어 건축주와의 면담 일정을 어기게 된 것을 두고 ‘나는 이날 전문가로서 실패한 건축가였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건축의 역사는 지붕의 역사다. 물리적 재료로 허공을 가로지르려는 지난한 시도가 건축 역사를 관통하는 화두다”(164쪽)나 “집은 처음에 불 피우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집의 심장은, 집의 마음은 부엌이다. 부엌이 없다면 그것은 집이 아니고 기숙사다. 부엌은 야구장으로 치면 포수석이다”(172쪽) 같은 말은 독자의 생각의 폭을 불현듯 넉넉하게 키워준다.


‘건축가는 작곡가이고 현장 소장은 지휘자’라고 말하는 저자가 시공팀과 호흡을 맞춰가는 대목도 흥미롭다. ‘약은 약사에게, 집은 건축가에게’라는 믿음을 좌우명 삼고 있는 저자에게 현장에서의 철저하지 못한 마감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시골집 화장실의 타일 줄눈 하나도 칼같이 다 맞춰놓는 일본의 집 짓는 장인의 ‘노가다 자세’를 부러워하는 이유다.


하지만 열정은 전염되나 보다. “작업팀이 힘들어하기보다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소식이었다.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었다. 이 건물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모양이라고도 했다. 시공하다 뭔가 안 맞으면 현장 소장이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 뜯고 재시공을 한다고 했다. 다들 미쳐가고 있는 모양이었다”(213쪽)는 대목에선 짠하고 뿌듯했다. 요즘 우리 주위에서 쉽사리 찾기 힘든 장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마치고 이제 완공된 집을 보여줄 차례다. 각종 사진과 설명으로 풀어낸 책 뒷부분을 가리켜 그는 ‘저자 직강’이라고 했다. 화려한 화보가 아니라 정갈한 사진들이 눈을 가득 메운다. 그 속에는 프로의 자부심이 배어 있다. 두툼한 수학 문제집을 마침내 다 풀어낸 의기양양한 수험생 같은.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어딘가 한 줌의 가치라도 있다면 독자들이 그 부분만 뽑아 간직하길 바란다”며 “나머지는 훌훌 던져버리시기를. 선물을 받고 포장지는 미련없이 구겨버리듯”이라고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그러나 어떤 선물은 포장지마저 소중한 법이다.


글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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