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직장인들이 테러주도|「GNP만불일본」기습한 도시게릴라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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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최철주특파원】지난달 29일 동경·대판등 8개 도·부·현에서 과격파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방화사건은 세계에서 치안상태가 가장 양호하다고 일컬어지는 동경을 주무대로 일어났으며 정보화사회의 급소를 찔린채 도시기능이 마비되도록 경찰도 속수무책이어서 짜임새있고 질서지키는 일본사회에 대한 통념을 흔들어 놓았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접어들면서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에 과격파가 「시가전」까지 감행하는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번에 도시 게릴라 작전을 전개했던 중핵파는 22개과격파가운데 손꼽히는 극렬단체로 일본혁명적 공산주의 동맹 전국위원회를 가리킨다.
1960년 이른바 안보투쟁 (미일신안보조약체결 반대투쟁)에서 주역을 담당했던 학생단체에 뿌리를 두고있다.
중핵파는 사회주의에 의한 세계혁명의 시대가 온다고 믿고있다. 이들은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기성 좌익당파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인 혁명으로 추구한다는 이른바 신좌익운동을 담당해왔다.
60년 당시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62달러. 정부가 경제성장력과 경쟁력을 제고하면서 소득과 지역격차를 줄이자고 기치를 내걸었던 시기다. 그러나 동경올림픽(64년)을 전후하여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소득·소비수준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격파의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72년 적군파에 의한 요도호 납치사건과 텔아비브공항습격사건, 작년과 올해에는 나리따(성전)공항 확장공사에 반대하는 극렬한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면 과격파에 의한 집단테러도 사라질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도 사실상 무너진 상태다.
현재 일본내의 과격파는 모두 22개파에 약3만5천명(경찰백서추정). 이중 중핵파는 약2천8백여명. 이들의 투쟁방법은 살인·방화에서부터 화학탄·로키트탄 사용까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이 단체를 이끌어갔으나 지금은 70%가 직장인으로 조직의 틀이 크게 바뀌었다.
이 조직가운데는 「무장유격대인민혁명군」이라는 섬뜩한 이름의 소그룹도 있으며 게릴라공작을 지휘하는 리더들은 40대전반의 동경대출신들로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일본의 형세를 살피면서 실행작전을 내리는 무서운 테러리스트들이다.
중핵파의 조직원들은 직장에서 가장 얌전하고 겉으로 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이 노무관리가 허술한 공무원이거나 우편배달·전화수리·가스검침등 외근이 잦은 직장인이며 자신의 월급·보너스까지 활동자금으로 바쳐가면서 테러활동에 가담,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국철테러사건에는 놀랍게도 국철직원2명이 관여했음이 밝혀졌다.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 출근하는 중핵파의 조직원은 극렬한 데모에 참가할때에는 헬미트에 점퍼를 입고 얼굴은 수건으로 가린다. 데모가 끝나면 헬미트·점퍼를 버리고 넥타이 차림으로 태연히 회사로 달려간다.
경찰은 전전처럼 강력한 경찰권을 행사할수 없으며 이들의 암약이 워낙 조직적이어서 경비와 수사에 만전을 기할수 없다고 푸념하고있다.
최근 중핵파의 국철에 대한 테러·방화사건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 중핵파의 고령화(40대전반)를 방지하기 위해 나이어린 사람들에게 실시한 이른바 「신병훈련」이며 이들의 투쟁경험이 쌓이면「혁명군」으로 편입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풍요한 사회 뒤안길에 「비행문화」가 계속 자리잡고 있는것은 테크놀너지의 발전과 함께 국가권력의 변화, 엄격한 노동윤리의 변질, 사회규범의 해이 때문이며 환상적 욕구나 불만을 가진 집단이 사회해체를 노리는 테러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달 29일 사건이 발생하자 공·민영방송은 모두 정규 프로그램 방영을 중단하고 몇시간동안 범행현장을 고발했으며 신문들은 과격파의 만행으로부터 사회를 지켜라」(독매신문), 「시민들을 고통스럽게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건가」(조일신문),「과격파를 철저히 추적하라」(일본경제신문)고 주장하고 『폭력·파괴·선동등 반사회적 행위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수가 없다』(조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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