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부른 브렉시트 혼란, 여성이 뒷수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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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정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정치적 혼란을 수습할 영국 차기 총리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 등 두 여성이 부상했다. 둘 중 한 명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브렉시트 협상 담판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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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적 혼란에 빠진 국가를 위기에서 구할 지도자로 여성 정치인들이 부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테리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P=뉴시스]

독일 일간 디벨트는 5일(현지시간) “남자들이 벌여놓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여성들이 나섰다. 메이 장관과 메르켈 총리,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등이 새로운 여성 정치 시대를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유럽이 비로소 안전한 사람들(여성)의 손에 맡겨졌다”고 전했다.

EU 측 협상은 메르켈이 이끌고
영국 정부는 여성 총리 유력
잔류파 스코틀랜드 수반도 여성
“혼란기에 여성 특유 포용력 기대”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정치·경제적 혼란 국면에서 여성 리더십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여성 정치인 부상이 두드러진다. 보수당에 이어 노동당에서도 브렉시트 이후 불신임을 받고 있는 제레미 코빈 대표 후임으로 앤절라 이글 부대표가 떠오르고 있다.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이 와중에 EU 잔류를 외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알린 포스터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 리안 우드 웨일스 민족당 대표 등도 여성이다. 영국 주요 정당의 지도자들이 모두 여성으로 채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가디언은 “미국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오는 11월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클린턴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의 지지율 격차를 두 자리 수로 벌리며 앞서고 있다.

오는 9월 선출되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도 여성이 맡을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70년간 9대 사무총장까지 모두 남성이 차지해왔다. 불가리아 출신인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메르켈 총리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갑자기 유리천장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여성 지도자들이 부상하는 이유는 뭘까. 가디언은 “혼란기에는 사람들이 여성 특유의 포용력과 안정감에 기대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상원의 앤 젠킨 케닝턴 남작 부인은 “사회 전체에 ‘유모, 얼른 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세요’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혼란기에는 여성이 더 이성적이다.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고 (남성처럼)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접근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애나 소우브리 영국 중소기업·혁신 담당 차관은 “남성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은 혼란을 겪을 만큼 겪었다”며 메이 장관 지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여성 리더십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소피 워커 영국 여성평등당 대표는 “메이 장관과 레드섬 차관의 경쟁이 여성들의 활약으로만 부각되는 게 안타깝다. 정책 검증이 아니라 여성에만 주목해 여성 리더십 운운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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