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最古 백제 이두문 찾아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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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520년 백제 시대에 쓰인 이두문(吏讀文)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무령왕릉(1971년 발굴)에서 출토된 사마왕 왕비의 은팔찌(국보 160호)에 음각돼 있는 명문(銘文)이 이두문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다.

이 팔찌의 명문은 무령왕릉이 발굴된 지 30년이 넘도록 무슨 의미인지 해석이 되지 않았었다.

정재영(한국기술교육대 국어국문학)교수는 이같은 주장을 담은 논문 '백제의 문자 생활'을 오는 24~25일 '한국과 일본의 한자.한문의 수용'을 주제로 일본에서 열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교수의 논문은 한자가 일본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에 영향을 준 시기를 대폭 앞당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주목된다.

팔찌에 새겨 있는 글자는 "庚子年 二月 多利 作 大夫人□ 二百 主耳"다. '경자년(庚子年)'은 서기로 환산하면 520년이다. 이 글씨가 이두문이라면 560년 이후에 쓰인 신라.고구려의 이두문보다 앞선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백제에는 이두문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수의 주장에 따라 이 문장을 요즘말로 풀이하면 "520년 2월 다리(多利:사람이름)가 만들었다. 대부인(왕비)의 장신구(팔찌)는 1백66g이다"가 된다. 제작자와 제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문장에서 백제 시대 문자 생활의 비밀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 정교수의 주장이다.

정교수가 이 명문을 이두문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는 이 문장의 어순이 우리말 어순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 하듯이 글을 쓰되 문자만 한자로 빌려다 쓰는 이 같은 방식이 이두문의 특징이다.

둘째는 우리가 쓰고 있던 말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한자를 빌리고 있다는 것이다. 팔찌를 만든 장인인 '다리'의 표기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주(主)'자의 경우도 고대의 무게단위인 '수(銖)'자를 차용해 쓰고 있다고 했다. 이 문장에 나오는 '2백30주'를 요즘 무게 단위로 바꾸면 1백66g 정도가 된다.

다음으로 세번째 근거는 문장 맨 끝에 나오는 '이(耳)'자를 문장 종결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 종결사로 쓰인 '이'자의 용례는 다른 이두문에서도 발견된다.

정교수는 이와 함께 '대부인'다음에 쓰인, 무슨 글자인지 몰랐던 한 글자가 모양상 '영(永)'자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를 장신구로 연결시켰다.

정교수는 "이두문의 또 다른 특징인 구결이나 토를 다는 것은 8세기 이후에나 나오기 때문에, 이 팔찌의 문장에는 구결이나 토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어순, 한자 차용, 문장 종결사를 모두 갖춘 이 문장은 초기 이두문의 가장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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