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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이웃 나라는 협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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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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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국내 중국 연구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마도 “중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가 아닐까 싶다. 모호함이 중국의 대명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핵(北核)에 반대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엔 동참하면서도 북핵을 막기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도입엔 반대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지극히 이중적이다. 무엇이 중국의 본심인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중국의 외교 행태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중국 행태 읽는 세 가지 키워드
중국 지위 우월하다는 중화사상
현 상황에서 최선 찾는 현실주의
이념 공유보다는 자국 이익 추구

세상 중심 꿈꾸는 중국 외교 경로
경제적 역량의 세 구축서 시작해
고도 책략 추진하는 술 단계 진입
향후 글로벌 표준 만드는 법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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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베이징(北京)에서 만나 한목소리를 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강력하게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중국이 닷새 앞선 20일께는 대북제재 이행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했다. 여느 때보다 빠른 행보란 평가를 낳았다. 북한 문제에 대한 명(明)과 암(暗)을 동시에 보여준다.

중국의 주변국 외교는 ‘친·성·혜·용(親·誠·惠·容)’ 네 글자로 요약된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성실하게 대하며 혜택을 주고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필리핀·베트남 등과 대립하고 있다. 시진핑의 친·성·혜·용 선언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이런 중국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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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중국과 중국인에게 나타나는 반복적 행위 패턴을 관찰한 결과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중국의 외교 행태를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화사상과 현실주의, 그리고 이익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중화사상을 보자. 이는 수천 년 중국 역사 속에서 중국인의 머릿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사상이다. 중국은 자신을 ‘중화(中華)’ 혹은 ‘화하(華夏)’라 해 스스로를 높였던 반면 주변의 다른 민족은 ‘이적(夷狄)’으로 천시했다. 이를 중화사상 또는 화이(華夷)사상이라 한다.

‘화(華)’와 ‘하(夏)’는 중원 지역의 한족(漢族)을 지칭하며 문화적으로 우월한 민족임을 뜻한다. 반면 ‘이(夷)’는 문화 수준이 낮은 주변 민족을 이르는 말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통해 구별됐다. 화이사상은 철저한 한족 중심주의다. 그 결과 이민족을 대하는 수단으론 오랑캐로서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법이 곧잘 이용되곤 했다.

이런 한족 중심주의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이웃과 선하게 지내고 이웃과 동반자로 지낸다(與隣爲善 以隣爲伴)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화사상이 몸에 밴 중국은 이웃 나라를 협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협상은 지위가 대등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중국의 지위가 우월하다고 보는 중화사상의 인식 속에서는 주변국과의 협상이란 가당찮은 것이다. 주변국은 협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일 뿐이다. 최근 우리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중국 고위층이 서슴없이 토해 내는 말들에서 이웃을 협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대하려는 중화사상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외교 행태에 영향을 주는 두 번째 요소는 그 역사가 오랜 중국인의 현실주의다. 이는 ‘현실 적응(adaptation)’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중국의 그 많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왜 유가와 법가는 소멸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나. 이들 사상이 현실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또 현실에 가장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귀신을 말하지 않았다(不語怪力亂神)’는 말에서 현세에 집중했던 유가와 법가의 전통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중국 외교의 판단 잣대는 항상 바로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게 최선일까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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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은 왜 소련에 일방적으로 기우는 ‘일변도(一邊倒)’ 정책을 폈을까. 또 70년대 말 개혁개방에 나선 덩샤오핑(鄧小平)은 왜 ‘2등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조용히 실력을 키움)’를 강조했나. 이 모두 그 당시 중국 국력의 부족을 절감한 결과다. 반면 장쩌민(江澤民) 시대에 중국도 이젠 필요한 역할은 하겠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말하고 후진타오(胡錦濤)가 중국의 평화적 부상(和平?起)을 주장하게 된 건 모두 부쩍 커진 중국 국력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G2(미·중)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엔 시진핑이 ‘중국꿈’이란 원대한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현 국제질서는 중국에 의해 이룩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현 국제체제의 최대 수혜자라는 말이 나오는 건 중국이 그만큼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 행태를 결정짓는 세 번째 요소는 이익 추구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게 중국’이란 우스개 말이 돌 정도로 중국은 이익 추구에 올인한다. 중국은 자신을 ‘제3세계 국가’로 자처한다. 그러나 이념과 체제의 공유보다는 자국의 이익 확대만을 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량학살이 일어난 남수단에서 중국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겠다는 정책을 표방하며 자국의 이익(석유 수급)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는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 접근하겠다며 유엔의 대북제재엔 동참하면서도 ‘북한 인민의 복지’를 내세워 북한과의 거래는 계속하고 있는 중국의 이중적 행태를 연상케 한다. 북한 복지 운운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내건 구실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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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戰國)시대 진(秦)의 명장이었던 사마착(司馬錯)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려는 이는 힘써 그 땅을 넓히고 군대를 강하게 하려는 자는 힘써 그 백성을 부유하게 한다(欲富國者 務廣其地 欲强兵者 務富其民)”고 했다. 정치와 경제, 군사 등을 모두 국력의 주요 토대로 봤던 중국 사상가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너른 땅에 백성 또한 부유해지고 있는 시진핑의 중국이 이제 외치고 있는 중국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것’으로서 다시 세상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중국의 포효에 다름 아니다. 한비자(韓非子)는 “항상 강한 국가도, 또 항상 약한 국가도 없다(國無常强 無常弱)”고 말했다. 세력 전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중심으로 거듭나려는 중국의 외교는 현재 일정한 경로를 따라 발전하고 있다. ‘세(勢)→술(術)→법(法 또는 制)’의 경로가 그것이다. 세(勢)는 역량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래의 고속 성장을 통해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토대로 이제는 G2로 인정받고 있다. 이미 세를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주요 경제정책을 제시하는 3중전회(中全會) 보고서의 핵심어를 78년부터 2008년까지 분석해 보면 경제가 161회로 가장 많았고 이어 발전이 160회, 개혁이 159회였다. 이는 중국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역량 쌓기에 나설 것임을 말해 준다.

그다음 단계는 고도의 책략을 뜻하는 ‘술(術)’의 추진이다. ‘술’은 중국의 국력 상태를 보아 가며 펴나가는데 예측불허, 합법적, 국제사회로부터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을 내용 등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예측불허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갑작스러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건립,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술’은 적용 대상엔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stress-test)’로 작용한다. 중국의 정책을 거부하기도 또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일정 기간 연출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중국으로부터 이런 테스트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받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戰勝節) 참석도 그렇고 사드 문제 또한 그렇다. 중국은 이미 ‘세’의 단계를 지나 ‘술’의 단계에 진입해 있다.

중국 외교 경로의 마지막 단계는 ‘법(法)’으로 이는 중국 주도의 ‘제도와 규범, 표준의 구축’을 말한다. 중국은 하루빨리 이 단계에 진입하기를 바라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제도화 과정은 상당한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 국제체제를 구성하는 ‘민주’와 ‘자유’ ‘인권’ 등과 같은 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사상과 이념을 중국이 제시해야 하는데 중국이 과연 그런 새로운 보편적 가치를 내놓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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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상대할 때 과대나 과소 평가 모두 금물이다. 우리로선 중국의 반복적 행동에서 보이는 중국의 독특한 행태를 냉정하게 분석한 뒤 이에 맞춰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가림=정치학 박사.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을 졸업했다.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충남경제비전위원회 위원, 대륙전략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 홍콩 주재 한국총영사관 선임연구원 및 호서대학교 중국산둥성웨이하이 창업보육센터 사장 등을 역임했다.

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