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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남들은 휘발유차까지 퇴출시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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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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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지난 1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유례없는 획기적 조치가 단행됐다. 대기오염 방지를 위해 일과시간(오전 8시~오후 8시) 중에는 20년 넘은 낡은 차의 도시 진입을 전면 금지한 것이다. 평균 8년이면 폐차하는 한국이라 20년 이상 된 차가 얼마나 되겠냐고 넘겨짚어선 곤란하다. 오래된 물건도 귀하게 여기는 나라인지라 20년 이상이 전체의 10%인 16만 대나 된다. 그러니 20년 넘은 노후차량의 진입 금지는 파리 시민으로서는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 서민층의 노후차량 보유 비율이 높아 “이번 조치가 없는 이들만 손해 보는 정책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하지만 파리시 당국은 꿈쩍하지 않은 채 진입 금지를 밀어붙였다.

파리뿐이 아니다. 브렉시트 지지로 만천하의 공적이 되다시피 한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재임 중 과감한 환경보호 정책을 펴 한때 ‘총리 0순위’로 꼽힐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했던 그는 아예 런던 중심부에서의 디젤차 퇴출을 추진했다. 디젤차가 런던 도심으로 들어올 경우 12.5 파운드(약 1만9000원)의 진입료를 물게 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디젤차가 대부분인 런던의 명물 블랙캡 택시를 2018년까지 모두 전기차로 교체토록 했다.

이렇듯 디젤차 퇴출은 세계적 추세다. 최악의 공기로 악명 높은 인도는 지난해 말 델리에서의 신규 디젤차 운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최근에는 이 정책을 다른 15개 도시로 확대할 움직임이다.

더한 나라도 있다. 노르웨이는 어느 나라보다 공기가 맑은데도 지난달 여야 정치인이 나서 2025년부터는 디젤차는 물론 휘발유차까지 판매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전기차·수소차 같은 무공해 차 외에는 일절 못 다니게 된 셈이다. 독일 역시 비슷한 조치를 2030년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린 어떤가. 며칠 전 미세먼지 세부이행 계획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예산을 투입해 친환경차 개발 및 디젤차 조기 폐차 등을 유도하는 게 골자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했던 ‘특단의 대책’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유럽 등지에서 진행 중인 고강도 정책을 몰라서 채택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욕먹을까, 지지도 떨어질까 못하는 걸 게다.

모든 이가 흡족해하는 정책이란 없다. 대기오염 정책 역시 욕먹을 각오로 밀어붙여야 될까 말까 하지 않겠나. 지난해 한국은 미세먼지 기준 대기오염 분야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최악을 기록했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