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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는 제2 인생 동반자, 가족 사랑 징검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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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악기상가의 악기 강습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종규·손수영·정재호·김정욱(왼쪽부터)씨가 각자 배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프리랜서 조상희

50년 가까이 한국 악기 시장을 이끌어 온 서울 낙원동 낙원악기상가는 악기 연주가 삶을 즐겁게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올해부터 ‘반려악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난 4월 55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악기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중앙일보 라이프트렌드 이벤트를 통해 선정된 4명의 독자가 2개월 동안 기타·색소폰·건반 연주법을 배웠다. 마지막 강습이 있었던 지난달 21일 낙원악기상가에서 이들을 만났다.

'반려악기 캠페인'에 동참한 독자 4명

"낙원악기상가 프로그램 참가 기타·색소폰·건반 연주법 두 달간 1대1 무료 강습 받아"

“기타를 배우면서 즐거운 긴장감이 흘렀어요. 은퇴한 뒤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뭔가를 배울 때 느끼는 기분 좋은 스트레스가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죠.”
  광고회사에서 30여 년을 일하다 5년 전 은퇴한 김정욱(59·서울 반포동)씨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가요나 팝송을 기타로 연주해 보고 싶어 이번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우는 악기다.

생활 활력소, 자존감 되찾아
직장에서 한창 일할 때 바쁜 시간을 쪼개 새벽에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는 김씨는 기타를 배우면서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했다. 나이가 들어 뭔가를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들었다. 김씨는 “회사의 부장, 임원 누구누구로 불리다 정년을 맞으면 타이틀이 떨어져 나가고 이름 석 자만 남는다”며 “은퇴하면 ‘빈 둥지 증후군’을 느끼기 쉬운데 기타를 배우면서 자존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악보를 볼 줄도 몰랐던 그가 기타 강습을 받은 지 두 달 만에 서툰 솜씨지만 쉬운 코드의 곡은 연주할 수 있다. “사실 연습도 많이 못했어요. 저보다 많이 연습하는 사람이라면 두 달정도면 충분히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악기는 배신하는 법이 없어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답니다.”
  김씨처럼 기타를 ‘반려악기’로 삼은 정재호(77·경기도 성남시 야탑동)씨 역시 더 늦기 전에 악기를 배워 보고 싶어 도전했다. 지난 해 겨울 클래식 기타를 배우다가 중도 포기했던 게 못내 아쉬워서다. 이번엔 통기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엔 손끝이 아팠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니 굳은살이 생기고 코드 잡는 것도 익숙해졌다. 정씨는 “기타를 배우는 동안 마음이 젊어져 힘든 줄도 몰랐다”며 “TV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쉬운 실버세대가 악기 하나를 정해 꾸준히 배웠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낙원악기상가의 강습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그는 계속 기타를 배울 계획이다. 아내를 위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있다. “12월 칠순을 맞는 아내에게 축하 연주를 해주고 싶어요. 아내한테 비밀로 했는데 신문에 나가면 다 알게 되겠네요? 허허.”
  색소폰 강습에 지원한 정종규(69·경기도 안양시 평촌동)씨는 3년 정도 독학으로 색소폰을 배운 ‘열혈 시니어’다. 1년 동안 동네 문화센터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색소폰을 배웠다. 그 뒤에도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아가며 손에서 색소폰을 놓지 않았다. “색소폰 전문가로부터 꼭 지도를 받고 싶었어요. 혼자 불다 보니 나쁜 습관이 있진 않은지, 호흡은 정확한지 늘 답답했는데 1대 1 강습을 통해 바로바로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정씨의 열정에 아들과 손자도 동참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아들은 트럼펫을 배우기로 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어린 손자와 함께 가족 행사 때 3대가 합동 연주를 할 계획이다.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조그마한 악단을 만들어 병원이나 노인정, 어린이집에서 무료 공연을 하면서 봉사하는 게 소망”이라고 전했다.
  참여자 중 막내는 건반을 배운 손수영(55·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씨. 25년간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배우고 싶었지만 항상바람으로만 남겨 두고 살았다고 한다.

가족·이웃 위한 연주회 꿈꿔
손씨는 “지난 4월 이벤트 응모 당시 생일이 막 지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했다”며 “건반을 배울 정도의 집중력과 노력이 있다면 사업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참여자 중에서 가장 젊다고 해도 50대 중반의 나이에 건반을 배우는 건 만만치 않았다. 짧은 시간에 음악 기초부터 배워야 했다. 처음 2주간은 힘에 부쳤다. 소위 말하는 ‘독수리 타법’으로 연주하다 보니 팔에 쥐가 날 정도였다. 시간 날 때마다 연습에 몰두했다. 차츰 손이 부드러워졌다. 목표도 세웠다.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막내 아들 임관식 때 축하 연주를 해주고 싶어요. 목표가 있어야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서요.”
  2개월의 여정을 마무리한 시니어 독자 4인방은 “악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 보라”고 입을 모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장수’가 축복이 되려면 경제적인 준비도 필요하지만 ‘반려악기’와 같은 취미생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직접 연주할 때 느끼는 쾌감은 사회에서 성공했을 때 맛본 그것과는 다른 성취감을 안겨줬다. 이들은 그것이 ‘음악의 힘’ ‘정신의 풍요로움’이라고 말한다.

'우리들의 낙원상가'
낙원악기상가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악기를 평생의 동반자나 친구와 같은 취미로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반려악기’ 캠페인을 한다. 취미로 악기를 연주하는 시니어를 응원하기 위해 1대 1 개인 강습을 통해 단기간에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30대 젊은 직장인을 대상으로한 ‘미생 응원 이벤트’와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국인 서포터즈(Nakwonsupporters)’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낙원악기상가 4층 합주실과 녹음실, 야외 공연장 ‘멋진하늘’에서 매월 다양한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우리들의 낙원상가’ 공식 페이스북(facebook.com/nakwonmusic)과 블로그(blog.naver.com/enakwon)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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