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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수능 전날에도…가족 모두 죽이는 '친족 성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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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 가슴에 박혀 있는 어두운 기억들은 낯선 그림자처럼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은수연(필명)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동안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피해 경험과 극복 과정을 담은 책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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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성폭행을 당했다. 이듬해 어머니에게는 가슴이 아프다며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오겠다고 말한 뒤 낙태수술을 받았다. 아버지는 수연씨에게 "네가 아이 낳는다고 할까봐 걱정했다"며 "지워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폭력과 성폭행은 계속 됐다. 아버지는 고등학생이 된 수연씨의 얼굴을 때린 뒤 주민등록증에 올릴 사진을 찍게 했다. 수능 전날에는 그를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딸이 거부하면 폭력을 휘둘렀고, 혁대를 주먹에 감아 때리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수연씨는 대학생이 된 후 경찰에 신고했고, 아버지는 성폭력특별법에 의해 7년형을 선고 받았다.

# 친족 성폭행, 씻을 수 없는 상처 남겨

근친상간은 친족간의 성관계를 의미하는데 넓게는 계부, 이복형제와의 성관계도 포함된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 가끔 밝혀지지만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도 존재한다. 근친상간의 원인은 다양하다. 친족간 성폭력 사건 통계를 보면 ‘알코올 남용’이 가장 큰 원인이다. 가해자가 정신분열(조현병)이나 망상장애를 지닌 경우도 있다. 딸이 자신을 유혹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에 의한 폭력은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힌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가족 성폭력은 어렸을 때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신고를 할 경우 돌아갈 집이 없어지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수연씨도 "기억은 무서운 거다. 내가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에 남긴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씩이라도 엷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친족 성폭행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친아버지와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이 마포대교에 올라 자살을 기도했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부모님이 이혼한 뒤 아버지의 몹쓸짓은 더욱 심해졌다. 믿고 의지했던 친오빠에게도 성폭행을 당하자 자살을 시도한 것이었다.

한 집에 사는 성폭력 가해자는 마주칠 때마다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피해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둘 중 한명이 사라져야 상처가 사라진다’는 식의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는 이유가 된다.

#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위증 요구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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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친족 관계에 의한 성폭력 사범 건수는 2005년 190건, 2008년 293건, 2011년 385건, 2014년 564건으로 10년동안 3배가 증가했다. 반면 성범죄 신고를 꺼리는 문화는 여전하다. 오히려 기소율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2005년의 경우 친족간 성폭력 기소율이 66.4%(276건)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48.6%로 떨어졌다.

심지어 가족을 고소를 한 후에 위증을 하기도 한다. ‘너 때문에 집안을 망치게 생겼다’는 식의 논리로 가족들이 피해자를 압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17세 소녀가 항소심에서 돌연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는 일이 있었고 2014년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16세 소녀가 재판 도중 의붓아버지와 ‘위장’ 혼인 신고를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 피해자 가족들이 꾸민 일이었다.

# 피해자와 가해자 즉시 떨어뜨려 놔야

현행법상 친족간 성폭력은 가중 처벌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5조에는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폭행을 저지르면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성폭행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과 비교하면 형량이 더 무겁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떨어뜨려 놔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해자를 안정시키고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가족들의 협조와 피해자들을 보듬을 사회시설 확충이 필수적이다. 피해자 중에는 친족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어머니 등에게 털어놓았지만 외면 당하는 경우도 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해바라기센터는 서울센터점 외에도 전국에 35개소가 있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수사지원팀이 피해 직후 응급키트를 이용한 증거채취부터 진료, 수사상담, 진술녹화, 국선변호사 연결, 개별 상담, 가족상담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서울해바라기센터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4천669명이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을 받았다. 매년 933명꼴로 센터를 찾은 셈이다. 우월적 지위, 친분을 악용한 성폭력이 대부분이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단 둘만 있는 상황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유죄 입증도 쉽지 않다"며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을 위해 성폭력 피해 지원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수민 기자·김기연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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