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정신』어디 갔나…장정구, 힘겹게 8방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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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전=이민우 기자】프로복싱WBC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22)가 8방어에 성공했다.
장은 1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벌어진 타이틀매치에서 무기력한 멕시코의 도전자 「호르헤·카노」(24·동급 9위)와의 경기에서 심판전원일치판정승을 거두었다. 미국·태국·일본 등 3명의 부심은 4∼7점차로 장의 우세로 판정했다.
이날 승리로 29승(12KO)1패를 기록한 장은 내년 1월 중순께 이미 두 차례 타이틀매치(2차 및 6차 방어전)를 가진 「헤르만·토레스」(멕시코)와 9차 방어전을 치를 예정이다.
이 대전만 승리하면 두 차례 선택방어를 가질 수 있어 11차 방어는 무난히 달성, 13차 방어 기록도전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장정구는「카노」와의 타이를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장정구의 트레이드마크는 폭풍우 같이 마구 몰아치는 화끈한 복싱.
무쇠주먹을 휘두르던 호쾌한 복싱의 김태식(전 WBA플라이급챔피언), 고도의 테크닉을 앞세워 아기자기한 복싱을 펼치던 박찬희(전 WBC플라이급챔피언) 등과 달리 장정구는 야생마와 같은 거친 복싱으로 팬들을 매료시켰었다.
이 같은 장은 이날 「카노」와의 타이틀전에선 나약한 챔피언이란 인상을 남겼다. 상대의 펀치력이 별 볼일 없기는 하지만 장은 몸놀림이 둔해져 빈매를 허용한데다 특히 주먹의 끊어 치는 매서운 맛이 없어져 답답함을 주었다. 장은 이날 6, 11회에 결정적 기회를 맞고서도 주먹에 자신이 없었는지, 몸조심을 하는지 무력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나 복싱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장정구가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결혼을 하면서 「헝그리 정신」이 점차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타이트롱런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날 모처럼 권투장을 찾아왔다는 한 관중은 『1류 회사 간부사원이 매달 봉급을 차곡차곡 쌓아도 10년을 모아야 하는 8천9백만원이란 막대한 거금을 단 36분만에 거둬들이는 운동치고는 챔피언이 너무 쉽게 돈을 버는 것 같다.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프로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챔피언은 팬들을 흡족 시킬만한 멋진 경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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