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아이들 볼모로 한 무상보육 싸움 끝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어린이집과 야당의 반발을 샀던 맞춤형 보육이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0~2세 75만 명이 대상이다. 맞벌이 가구는 하루 12시간의 종일반을, 그렇지 않은 가구는 하루 6시간의 맞춤반을 이용하는 제도다. 2012년 3월 도입할 때 맞벌이와 외벌이에 상관없이 온종일 돌봐주던 것을 선별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일·가정 양립 확대를 위해 맞춤형 보육을 보완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종일반 기준 완화와 수입 보장이다. 종일반 이용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해 외벌이 가정에도 개방한다는 것이다. 또 20% 삭감설로 어린이집의 집단 반발을 샀던 맞춤반 기본 보육료는 깎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6% 인상해 보육 교사들의 처우 개선에 활용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수입이 줄어든다며 툭 하면 집단 휴업 엄포를 일삼는 어린이집 눈치를 보며 후퇴한 것이다.

어린이집 반응은 단체별로 다르지만 일단 혼란은 수습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앞서 벌어진 누리과정(만 3~5세 130만 명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부와 각 지방교육청 간의 예산 ‘핑퐁’이 해결되지 않아서다. 정부가 책임지라며 예산 편성을 거부한 일부 지역에선 어린이집이 또 가세해 2차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이런 반목을 추방하지 못하면 결코 초저출산국(출산율 1.3명 이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실상이 그렇다. 올 1~4월 신생아 수가 14만7900명으로 역대 최저를 찍었고, 내년부터는 14세 이하 인구가 65세 이상보다 적어진다. 인구절벽이 코앞인 것이다.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안심 보육이 가장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엊그제 인천의 사업 현장을 찾아 “출산·육아·보육으로 인한 여성들의 경력단절이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보육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연간 10조원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잇속만 챙기려는 어린이집과 표만 곁눈질하는 정치권, 원칙 없이 휘둘리는 정부 3자의 공동 책임이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에 대한 근본 대책이 시급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무상 시리즈’를 쏟아내 돈벌이에 나선 어린이집이 급증했다. 전국적으로 4만1551곳이 있는데 이 중 국공립은 6.6%(2749곳)에 불과하다. 동네 ‘빅 마우스’인 원장들에게 정치권이 부화뇌동하고 압도적인 숫자에 정부가 휘둘리는 이유다. 지금 엄마들의 분노와 불신은 임계점에 있다. 원장들부터 자성하고 신뢰 회복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부는 무상보육의 관리와 재정 주체를 명확히 하고, 국공립 확충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어린이집의 집단행동을 엄단하고 보육 질이 부실한 곳은 퇴출시켜야 한다. 정치권의 책임은 더 막중하다. 지난해 말 여야 합의로 예산까지 통과시킨 맞춤형 보육을 야당이 뒷다리 잡아 일을 키운 게 아닌가. 말로만 초당적 협력을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