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까지도 공산품은 대부분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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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에서 확정 발표한 상품의 추가 수입 개방 스케줄을 살펴보면 일부품목의 가감이 있었으나 당초 계획했던 원안과 큰 차이가 없다.
88년까지는 공산품에 관한 한 전면적으로 수입을 트겠다는 것이 기본골격이다. 목표 개방률 95.4%가 말해주듯이 최소한 대외개방정책면에서는 선진국에 손색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첫 자유화일정(84∼86년)이 발표되었던 지난 84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는 시작으로 시빗거리가 될만한 주요품목들은 죄다 86년 이후로 미뤄 놓았었는데 이제 이것들을 모두 풀어놓을 순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깥으로부터 개방압력이 가중되어 그 동안 개방속도를 내온 셈인데 대내대응이 갖추어져 있는지는 내년부터 판가름이 날 판이다. 당장 86년부터 수입자유화가 되는 특수강만해도 「수입개방=시장잠식」이라는 등식이 즉각 적용될 전망이다.
물론 수입자유화품목에 포함 시켰다고 해서 그대로 다 수입이 늘어 나는 것은 아니다. 국내실정을 감안한 추천제도의 운영이라든지, 관세부과를 통한 억제수단 등이 적극적으로 동원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년을 기점으로 국내시장의 판도는 상당한 변모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입자유화계획의 원안자체가 밖으로부터의 개방압력에 의해서 였다기 보다는 국내에서 한동안 득세했던 개방론자들이 스스로 채택했었던 정책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국산품질이 좋아지고 수출도 늘어난다는 논리였다.
이같은 개방계획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도 채 시도해보지 못한 가운데 바깥으로부터의 개방압력에 직면한 셈이 됐다. 개방론에 대한 근본적인 시비는 고사하고 오히려 대외 개방압력에 대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최소한의 성의표시」로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의당 산업구조 개편차원에서 따졌어야할 개방정책이 통상차원의 개방압력으로 인해 문제핵심이 흐려진 꼴이 됐다.
요컨대 스스로의 개방추진 의지에다 바깥으로부터의 개방압력까지 가세되고 있는 만큼 향후 2∼3년간 신규 개방 국산품 등의 경쟁력은 호된 시험을 치르는 격이 된다.
어쨌든 소재에서부터 시작해 자동차·볼펜·손목시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공산품에 조만간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진다.
최근에 현안문제로 클로스업 되었던 보험시장이나 지적소유권문제 등은 사실 비중 면에서 이같은 상품수입개방계획에 비할 바가 못된다. 산업구조 전체가 좋든 나쁘든 간에 이미 뿌리째 변신을 요구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개방론자들은 하루빨리 과보호의 비효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방의 고삐를 조금도 늦출 수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다수들은 과도한 개방추진에 따른 파국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맞서 왔다. 그러던 것이 막상 결정적인 대목에 이르자 토론다운 토론 한번 없이 개방정책을 기정 사실로 간주하면서 싱겁게 결말이 나버린 것이다.
이로써 상품부문에 있어 미국으로부터의 개방압력문제는 일단락 된 셈이다.
오린지·쇠고기 등 농수산품을 제외하고는 미국측의 요구가 저절로 반영되어있다. 1∼2년의 시차가 있긴 해도 나일론 카피트·퍼스널컴퓨터·승용차·건설 장비·대두유 등의 개방스케줄에 대해서도 더 이상 시비가 될 것 같진 않다.
예시대상에는 빠져있는 담배의 수입자유화 역시 아무리 늦어도 88년은 넘기지 않을 전망이다. 완제품 수입이냐, 합작생산이냐 하는 방법의 문제와 전매청의 공사화 방안 등을 포함한 대내적인 사전준비절차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품부문에서 우리가 이처럼 능력에 부칠 정도로 수입개방을 한다고 해서 미국이 다른 부문에 대한 개방요구를 완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해선 곤란하다.
통상법 301조를 걸어 보복조치를 들먹이면서 요구해 오고 있는 보험시장 개방과 지적소유권 보호요구 등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사안으로 남을게 뻔하다.
따라서 당면할 현안문제들은 앞으로 개별협상이 계속될 담배를 비롯해 보험·물질특허·저작권·영화·소프트웨어 등에 초점이 모아질 전망이다.<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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