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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호·김용학 ‘협업’ 선언 믿을 만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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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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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
논설위원

연세대 김용학 총장과 고려대 염재호 총장은 37년 절친이다. 김 총장이 두 살 위지만 같은 73학번으로 사석에선 말을 놓는다. 고교·대학 동문도, 전공도 다른데 어떤 연(緣)일까. 알아보니 1979년 처음 만났다고 한다. SK그룹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해외유학 장학프로그램에 두 사람이 두 대학 1등으로 뽑혀 1년간 같이 유학 준비를 하며 가까워졌다. 80년에 나란히 유학을 떠나 염 총장은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김 총장은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 교수가 된 뒤로는 막역한 지성의 동지가 됐다. 90년대엔 ‘사회비평’ 편집위원으로, 2000년대엔 공동 연구와 강연으로 서로를 채워줬다. 약속이나 한 듯 둘은 기어이 양대 사학의 총장이 됐다. 염 총장은 4수(修), 김 총장은 재수를 했으니 말이다. 1년 먼저 뜻을 이룬 염 총장은 지난 2월 김 총장 취임식 축사를 하고 찬송가도 함께 불렀다. 나는 많이 놀랐다. 개인적 우정이 ‘영원한 맞수’의 의례(儀禮)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이 일을 냈다. 고등교육의 낡은 패러다임을 허물고 새 모델을 만들겠다며 협업(協業)을 선언한 것이다. 핵심은 자원공유(resource pooling)다. 교수·강의·시설·학생·학점을 교류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그런 얘기를 들은 게 올 3월 14일 ‘21세기 문명사적 대전환, 대학이 앞장서자’를 주제로 본지가 연 대담에서였다.

사실 긴가민가했다. 대학 측도 어리둥절해했다. “우정과 현실을 착각한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또 놀랐다. 두 사람 주도로 최근 서울 10개 사립대 총장들이 ‘미래대학포럼’을 창립한 것이다. 총장들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대학이 열린 교육, 열린 연구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교육부 위세에 주눅 들어 숨을 죽이던 총장들이 살아 있다는 신호여서 반가웠다.

그래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포럼을 지켜봤다. “지식의 생산·유통 방식이 급변하는데 대학의 대처가 굼뜨다. 교수들부터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자성은 신선했다. “입시와 등록금에 족쇄를 채우지 말라”며 교육부에 모처럼 쓴소리도 했다. 하지만 협업의 담론보다는 개별 대학의 하소연이 많아 씁쓸했다. 스타 기질이 있는 염 총장이 발언을 많이 하는 바람에 “북 치고 장구 쳤다”는 말도 나왔다.

포럼에 대한 교육부 반응은 의외로 민감했다. “예전의 ‘7공자 클럽(7개 사립대 입학처장)’처럼 ‘10총장 클럽’을 만들어 대학 사회의 불화를 조장한다”며 못마땅해했다. 각자도생한 탓에 존재감이 없던 총장들이 움직이자 긴장한 것이다. 두 총장은 교육부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정에 기대 말만 앞세우지 말고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한 협업 플랜을 내놔야 진정성을 믿을 수 있다. ‘찔끔’대지 말고 과감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미래대학포럼·서울지역총장포럼, 더 나아가 전국 대학에 자원공유의 모델이 전파될 수 있다. 그리 되면 적폐 중의 적폐인 교육부의 관치도 기가 죽을 것이다.

먼저 교환 강의부터 시작해 보시라. 한 학기, 두 학기 계속 많아지는 맞수 대학, 맞수 교수의 열강에 학생들이 얼마나 환호하겠는가. 공급자 중심의 강의 쪼개기도 없애야 한다.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도 개설 과목이 2500개 정도인데 두 대학은 1만 개가 넘는다. 양교가 협학(協學)하면 30초 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학생·시설·교수 공유의 백미 아닌가. 그 다음은 협연(協硏)이다. 공동연구를 활성화해 출혈경쟁을 추방하고 시너지를 내야 한다.

두 대학은 여름방학 중 협업 가능 영역을 논의한다고 한다. 전통 사학의 거대한 담장을 허무는 창조적 파괴가 성공하려면 구성원의 신뢰와 공감을 얻는 게 필수적이다. 그 핵심은 교수다. 대학에 총장 아닌 사람은 ‘부총장’ 한 명뿐이라는 말이 있듯 교수의 기득권을 깰 결기가 필요하다. 김 총장과 염 총장이 과연 그럴 뚝심이 있을까. 말보다는 실천이다.

양 영 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