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일본인 남성 "간병에 지쳤다" 치매 아내 살해

중앙일보

입력

간병에 지친 87세 일본인 남성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살해해 경찰에 체포됐다. 사이타마(埼玉)현 경찰은 25일 사카도(坂?)시에 사는 가와시마 다로(川島太郞)를 살인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가와시마는 이날 오전 0시 45분쯤 경찰에 전화를 걸어 “아내를 목 졸라서 살해했다. 간병에 지쳤다”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그의 집 1층 방 침대에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던 부인 유키(ユキ·85)를 발견했다. 유키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와시마는 약 10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돌봐왔다. 유키는 건망증이 심하고 다리와 허리가 약했다. 골절 등으로 인해 수년 전부터 바깥출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집 부근에 장남(55) 가족이 살았지만 부인의 간병은 대부분 가와시마의 몫이었다.

유키는 지난 4월 복지시설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두 달 가량 머물다 뭔가를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돼 이달 초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상태가 다시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장남은 “어머니는 시설이 답답하다고 말씀하셨다”며 “아버지는 간병에 지친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가와시마는 최근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요통을 호소하며 몸을 움직이는 걸 힘겨워했다.

인근 주민들은 “가와시마가 빨래를 널거나 유치원에 다녀오는 손주를 맞이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했다. 50년 가까이 이들 부부를 지켜봤다는 70대 여성은 “그는 성실한 사람이다. 장남 부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일을 저지른 것 같다. 이상적인 가족이어서 믿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에서 치매에 걸린 가족을 돌보다 지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치매에 걸린 81세 어머니를 10년 가량 병 간호하던 47세 딸이 74세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강으로 돌진했다. 신문 배달을 하며 생계를 보조하던 아버지가 손이 저린 증세가 심해져 일을 그만두게 돼 수입이 끊기자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부모는 숨졌고 딸은 저체온 상태로 발견돼 목숨을 건졌지만 살인과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해 12월 도치기(?木)현에서는 70대 남자가 11년 넘게 돌봐온 69세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지난달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산케이신문은 26일 “개호(介護·환자나 노약자 간호) 피로가 원인이 된 살인 또는 살인 미수사건은 집계를 시작한 2007년 30건이던 것이 2010년 57건으로 늘었고 최근에도 해마다 40~50건씩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개호 생활은 끝이 없는 마라톤, 살아있는 지옥으로 표현된다”며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이나 행정기관과 상담해야 한다”고 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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