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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개방…희생이 너무 크다|물질특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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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적소유권 문제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질특허」 문제다. 미국 측의 요청대로 물질특허를 전면적으로 인정해줄 경우 제약업계를 비롯해 농약·식품·화장품 등의 국내 정밀화학업계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측은 국내산업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빨라도 90년대 초에 가서야 물질특허를 인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 측은 내년부터 즉각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실시되고 있는 특허권제도에 따르면 제조과정에 대한 특허만을 인정하고 있다. 요컨대 물질 자체에 대한 특허나 용도 특허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변칙적인 수단이 통하게 되어 있고 실상 또한 그렇다는 것이 미국 측 견해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업종은 제약업계다. 특히 나름대로 국산화를 열심히 하고있는 회사일수록 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외국회사의 기술을 들여와 로열티를 물면서 복사품을 만들어 기본포장만 해서 파는 제약회사의 경우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원료를 수입해서 어렵사리 혼자 힘으로 약품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바로 물질특허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농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1백96종의 농약 중에서 69%에 해당하는 1백35종이 수입원료를 배합해서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물질특허가 적용되어야 하는 국내시장 규모는 약 30억∼4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 미국 측의 추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특허를 인정하는 즉시 로열티 부담이 한꺼번에 즉각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기왕 무시해온 물질특허들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며 신규특허에 대해서만 따져주면 된다. 더구나 의약품의 경우 특허출원에서부터 본격 생산에 이르기까지는 각종 임상실험 등이 필요하며 7∼8년 가량이 소요된다. 따라서 물질특허를 인정할 경우 로열티 추가지불에 따른 가격 면에서의 추가부담이 갑자기 몰아닥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물질특허를 인정하는 시점을 시작으로 해서 국내 산업의 연구개발에 결정적인 족쇄가 채워진다는 점이다.
특히 정밀화학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기술개발의 대종을 이뤄온 모방 제조나 공정의 일부 변경 등에 의한 신기술 축적 등은 원천적으로 불법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이 같은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일본이 76년에 스위스는 78년에 와서야 물질특허를 인정했다.
세계무역질서 유지의 구심적 역할을 하고있는 GATT에서도 미국의 지나친 물질특허 인정요구에 대해 탐탁치 않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내세워 한국이 지적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에 상용하는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GATT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어쨌든「엎질러진 물」이므로 미국 측의 스케줄에 따라 1년 안에 어떤 형태로든 협상을 통해 매듭을 지어야할 입장에 있다. 미국 측의 요구가 전에 없이 강력한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호락호락 미국 측의 희망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는 게 상공부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 측의 최근 움직임은 앞으로 진행될 대미협상과는 별도로 「보복을 전제로 하는」미국 측의 지나친 지적소유권 인정요구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GATT회원국에 회람을 통해 호소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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