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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속에 묻힌 기억의 재생|작품 『플랑드르의 길』과 그의 문학…정소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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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클로드· 시몽」 은 지금부터 대략 30년 전에 프랑스 소설계를 풍미한 누보로망(신소설) 계열의 대표적 작가의 한 사람이다.
누보로망이 무엇이냐 하는 점을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특정의 개인에 의해 특정의 방법으로 체계적으로 시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로브그리예」의 견해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누보로망은 이론이 아니고, 소설을 새롭게 쓰려는 탐구적 노력이다②누보로망은 소설이 지속적으로 진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③누보로망은 인간과 세계 속에서 오르지 인간의 삶의 당위성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④누보로망은 완벽한 의미의 세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⑤누보로망은 작가의 앙가지망을 믿지 않는다 등등.
누보로망은 방법론적으로 리얼리즘 계열이며 의미를 추구하지 않으므로 스토리와 인물의 성격을 도외시한다.
심리학의 적용을 거부하고, 가시의 세계만을 논리성의 테두리를 무시한 채 묘사하고자 한다. 누보 로망은 다만 자신의 시선만을 믿을 뿐이다.「클로드· 시몽」 은 자신을 누보로망계열의 작가들과 다소 분리해주도록 요구할 만큼 또 다른 일면을 가지고 있다.
행위의 점감과 단절, 어떤 가시적 현상들의 붕괴, 정신적 환상들의 무성한 전개, 현재분사들과 상황전치사의 폭포와도 같은 활용에 의한 여러 가지 의미의 확산 등은 그의 문학의 특징이다. 「장·리카르두」 는 『누보로망의 제문제』라는 책 속에서 「클로드· 시몽」 의 이런 특징에 대해 『죽어 가는 병자가 가닿을 수 있는 형이상학적 최후의 상태가 획득할 수 있는 무질서의 질서』 라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그를 「프루스트」와 자주 비교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죽어 가는 병자의 세계 속에서는 연대기적 사고의 틀에 의해 의미의 축을 단계적으로 쌓아온 기존의 의미는 와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의 대표작『플랑드르의 길』(La route des Flandr-es ·1960년) 도 이런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2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어느 날 밤에 주인공의 의식 속에 전개된 내용을 그의 소설미학에 따라 기술한 것이다. 돌발적으로 의식되어진 기억의 단편들을 추적해가고 있다.
그 기억의 중심적인 장치는 전쟁에 패해서 플랑드르지방에서 남쪽으로 패주하는 장면이다.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된 기억, 수용소에 끌려가는 도중 열차 속에서 일어난 일, 수용소풍경과 하루하루의 일과, 그리고 거기에서 생활할 때 자신의 의식 속을 흘러갔던 추억의 단편들이 기록된다. 작품의 전개 시간은 그날 밤의 몇 시간에 불과하지만 의식의 폭은 플랑드르의 패주와 수용소 생활을 중심으로 마구 확산되어진다.
하나의 인물과 사건을 집중적으로, 체계적으로 기술해 나가지 않고 하나의 무대에 복합적으로 기억의 소생의 순에 따라 복합적으로 제시하고있다. 전우들의 피살과 자살, 아내의 묘한 행위 등이 기억 속에 소생된다. 아버지의 얘기도 주인공「조르지」의 기억 속에 회상된다. 그것은 결국 전쟁의 증오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에게 들려준 얘기의 단편을 회상하기에 이름으로써 그는 전쟁을 증오하고 있음을 암시하고있다.
『인간은 남이 가꾸고 아껴온 재산을 약탈하기 위해서 전쟁이란 수단을 동원하고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의향은 아주 암시적으로 느껴질 뿐 뚜렷한 주장은 없다. 인물들의 의식 속에 단편적으로 어떤 소리라든가, 영상이라든가, 말에 의해 복합적이고도 총체적으로 기록될 뿐이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밀려오는 「의식의 파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조르지·아넥스」의 표현을 빌면「바람에 나부끼는 아카시아 잎들의 반짝거림」처럼 의식의 편린들의 무질서의 질서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의 소설이 유별나게 난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섬세성이 그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다. 기억의 소생과 상상력 자체도 어떤 논리성에 따라 야기되지 않고 있다.
『플랑드르의 길』을 발표한 48세 때가 그의 소설의 일대전환이었다. 그 이전에는 그는『사기꾼』 (33세), 『바람』(45세) 등의 전통적인 리얼리즘기법에 의해 소설을 썼다. 스페인 내란을 다룬 『팔라스』(50세) 는 누보로망 계열의 작품이다.<필자=건국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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