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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국립생태원 ‘생명 사랑전’ “장욱진, 그이는 전생에 새가 아니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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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화가 장욱진(1917~90)은 늘그막까지 아이처럼 살았고 동심(童心)의 세계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까치·나무·소·개·달·집·가족처럼 화가가 잘 알고 좋아했던 것들을 되풀이그린 그림은 ‘회화적 압축’으로 평가받았다. 자신을 ‘까치 그리는 사람’이라 했던 그는 “나는 심플(simple)하다”며 선비처럼 유유자적했다.

내년 탄생 100년, 전야제처럼 준비
“생명과의 공생에 충실했던 삶”

“저는 장욱진 선생님의 삶과 작품세계가 생명과 관계맺음을 중시하는 공생에 충실했다고 봤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 필요한 새로운 기획이라 여겨 유족께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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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군 국립생태원 에코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생명 사랑전’을 관람객들이 들러보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충남 서천군 금강로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최재천 원장이 ‘장욱진 생명 사랑전’ 특별행사에 초대받은 손님들에게 인사했다. 엄정식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병종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등 참석자들은 생태와 장욱진을 연결시킨 독특하면서도 고개 끄덕여지는 의도에 박수를 보냈다.

고인의 장남 장정순 인하대 명예교수는 “선친이 서천에서 지척인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고 가까운 선영에 묻혀 국립생태원에서 전시를 여는 일이 감개무량하다”며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했다. 장녀인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은 ‘나의 아버지 장욱진’ 특강에서 “까치를 친구처럼 그리셨고, 나무 아래 사람은 탈속한 듯 보인다”며 “반복해 나타나는 도상 모두가 생명의 상생을 노래했다”고 설명했다. 장 관장이 “아버지가 가족을 얼마나 소중히 하셨던지 지금도 우리는 늘 떼로 몰려다니는데 오늘도 엄청 많이 왔다”고 소개해 웃음이 터졌다.

툭 터진 전시장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며 그림을 보고 그릴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오숙환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장은 “미술관이나 화랑이 아닌 생태원에서 전시해 가족 단위 관람객이 즐기는 걸 고인도 기뻐하셨을 것”이라고 축하했다.

내년은 장욱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기념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열린 이번 ‘생명 사랑전’은 전야제처럼 분위기를 돋웠다. 부인 이순경 여사는 남편이 타계한 뒤 “그이는 전생에 새가 아니었을까?”라 했다.

화가가 임종 며칠 전 그린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에는 속세를 떠나 달과 함께 하늘을 훨훨 주유하는 도인이 등장한다. 자화상이었을까. 다음 세상에서 그는 새가 되어 꿈을 이뤘을지 모른다. 041-950-5300.

서천(충남)=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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