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율방어 칼 빼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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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16일 "최근 원화가치 절상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맞지 않는다"며 "과도한 원화가치 절상을 방치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인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이다. 최근 원화 환율이 수출의 가격경쟁력을 위협할 정도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국내 증시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금 중 단기 환차익을 노리는 핫머니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한도를 4조원 더 늘려 환율을 안정시키겠다고 나섰다.

◇원화 환율의 이상 하락=원화 환율은 지난 4월 4일 달러당 1천2백58원에서 16일 1천1백76원으로 6.5% 내렸다. 환율 하락은 수출업체들엔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환율 때문에 석달 전보다 6.5%의 수익이 줄어든 셈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미 중소기업들의 고통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6월 이후 2조원의 외평채를 발행해 환율 방어를 시도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원화 환율은 11.5% 떨어졌다. 일본 엔화 환율도 비슷한 폭으로 떨어졌지만, 대만 달러는 2.0%, 싱가포르 달러는 5.2%밖에 내리지 않았다.

특히 중국 위안화와 홍콩 달러는 미국 달러 가치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전혀 변동이 없었다. 그만큼 이들 국가와의 수출 가격경쟁에서 뒤지는 것이다. 민간연구소들은 원화의 적정환율을 달러당 1천2백40원대로 추정한다.

◇적극 개입에 나서는 정부=최중경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16일 국민은행 등 5개 시중은행 국제담당 임원들과의 긴급 간담회에서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를 가볍게 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로 발행할 수 있게 된 외평채 4조원을 포함해 5조8천억원(48억달러)정도의 실탄을 환율 방어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달러를 매입해 환율의 추가 하락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지가 전달되면서 이날 원화 환율은 0.7원 오른 달러당 1천1백76.7원에 마감됐다.

하지만 환율 하락 압력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므로 원화뿐 아니라 엔화 등의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주가의 상승을 기대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계속 유입되면 원화 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조만간 중국 위안화 환율이 하락(위안화 가치 절상)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가세하고 있다.

위안화 환율이 떨어지면 원화 환율도 함께 내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경부 관계자는 "원화 가치는 이미 충분히 절상된 만큼 위안화가 절상된다고 따라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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