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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독일병정식 상명하복…검찰 “조폭 회사 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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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015년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을 역임한 페르디난트 피히. 그는 ‘눈 밖에 난 이는 꼭 제거한다’는 철권 경영으로 유명했다. 현재 회장인 마티아스 뮐러도 그의 직계로 분류된다. [블룸버그·중앙포토]

“한국 현실을 잘 모르는 독일 아우디 본사 출신들이 한국 폴크스바겐을 서자(庶子) 취급하며 주물럭거리다 보니 사태가 여기까지 커졌다.”

2차 대전 때 군대식 DNA 아직 남아
포르셰 등 창업가 수십년 철권경영
“NO라는 대답 자체가 금기어였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에서 3년간 일했던 자동차 업계 인사의 얘기다. 그는 “독일 본사에서 한국 지사에 ‘배출가스를 조작하라’는 터무니없는 지시를 내렸고, 그걸 그대로 수용했다면 아우디코리아 임원들이 ‘폴크스바겐 차는 그렇게 해도 문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검찰은 지난 17일 폴크스바겐 독일 본사가 한국 지사에 휘발유 차량인 7세대 골프 1.4 TSI 배기가스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라고 지시한 e메일과 관련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 지사 임원이 문제를 제기했다면 잘렸을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조폭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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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출범한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는 폴크스바겐 그룹 산하 브랜드인 아우디가 폴크스바겐까지 관장하는 독특한 형태다. 이런 방식은 전 세계에서 중동·대만·한국뿐이다. 이런 ‘한 지붕 두 가족’ 구조에 한국 시장을 무시하는 아우디 출신 본사 임원이 부임하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크스바겐 출신의 한 자동차 업계 인사는 “초창기 부임한 독일 본사 임원에게 한국 기후가 ‘열대우림’이 아니란 것부터 알려줘야 했을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본사 직급이 과·차장 정도인 독일인 직원이 한국에 임원으로 오면서 ‘한국인은 믿을 수 없다’ ‘한국에서 폴크스바겐이 잘 팔리는 건 순전히 제품이 좋아서다’는 식으로 한국인 임직원의 노력과 열정을 무시하곤 했다”고 전했다. 폴크스바겐의 한 영업사원은 “아우디 출신은 지난해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불거졌는데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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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직된 문화를 버티지 못하고 한국인 임원들은 최근 3년간 줄줄이 옷을 벗었다. 폴크스바겐 출신 한 자동차 업계 인사는 “최근 검찰 조사를 받는 와중에 사과 대신 변명과 질질 끌기, 할인 마케팅으로 일관하는 것도 한국 시장 상황을 본사 측에 정확히 전달해 줄 통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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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 근로자가 ‘비틀’을 만들고 있다. 비틀은 히틀러의 지시로 탄생된 국민차다. [블룸버그·중앙포토]

독일 본사의 황당한 지시를 한국 지사가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정황에 대해 폴크스바겐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폴크스바겐은 1937년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창립됐다. 급박한 전시에 군용차 물량을 대면서 ‘군대식 DNA’를 새겼다.

엔지니어 출신 볼프강 포르셰, 페르디난트 피히 같은 창업 일가의 ‘카리스마’는 과감한 의사결정과 인수합병을 가능케 했지만 “창업주 눈 밖에 난 이는 반드시 제거한다”는 식의 수십 년 철권 경영으로도 이어졌다.

피히는 포르셰와 독일 최대 ‘자동차 제국’의 왕좌를 놓고 암투를 벌이다 지난해 4월 이사회에서 쫓겨났다. 둘은 지난해 ‘디젤 게이트’ 파문이 불거졌을 당시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의 정점으로 지목됐다.


▶관련 기사
① 한국 기준 미달 폴크스바겐, 본사가 배기가스 SW 조작 지시
② [사설] 폴크스바겐 앞에 한국은 왜 한없이 작아지는가



독일 본사 내부 고발자들은 “배출가스 문제를 저렴한 비용에 해결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노(No)’란 대답 자체가 금기어였다”고 털어놨다.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 측은 “지금 시점에서 어떤 내용도 해명하기 적절치 않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폴크스바겐 임원 구속영장 청구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21일 아우디폴크스바겐코리아의 인증담당 윤모 이사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의 영장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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