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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정찰·추적 나서고 폭발물 찾고…육군·해군·해병대서 활약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사람보다 10만 배 뛰어난 후각, 10배 뛰어난 시각, 4배 뛰어난 청각. 군대는 개의 이런 엄청난 능력이 잘 발휘될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어둠 속에 숨은 적군도 “킁킁” 한 번에 금세 위치가 들통나곤 하니까요. 그래서 소년중앙은 지난 8일 강원도 춘천 육군 군견훈련소를 찾았습니다.

처음엔 빠른 속도로 정확히 목표물을 찾는 신통한 능력에 놀랐죠. 알면 알수록 인상적인 것은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까지 명령을 수행하는 꼿꼿한 군견 정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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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반 수색 훈련 중인 정찰견 ‘군졸’과 담당 군견병인 김현철 상병.
2 군견용 러닝머신에서 체력단련 중인 폭발물 탐지견 ‘순대’. 시속 16㎞ 정도의 속도로 1시간 이상 쉼 없이 달릴 수 있다.

인적이 드문 한 야산. 셰퍼드 한 마리가 달립니다. “타닥, 타닥.” 빠른 발걸음 탓에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사방에 요란하군요. 그러다 갑자기 정적이 흐르네요. 녀석이 멈춰선 겁니다. 앞에는 덤불이 우거져 있죠. “아신. 인지, 미접촉.” 멀리서 무전 소리가 들립니다.

녀석이 다시 빠르게 달립니다. 그러다 한 남자와 눈을 마주치곤 자리에 앉습니다. 무장한 군인입니다. “아신, 어디!” 군인이 소리치네요. 녀석이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군인이 그 뒤를 따르죠. 둘은 아까 그 덤불 앞에 멈춰섭니다. 긴 풀이 얼기설기 뭉친 평범한 장애물 같아 보이는데요. 그런데 웬걸, 그 속에서 ‘대항군’ 표지를 단 사람이 걸어 나옵니다. 녀석이 은신하고 있던 적군을 찾은 거죠. 이 귀신같은 눈썰미의 개는 어디서 온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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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중인 정찰견 ‘아신’과 담당 군견병인 임정욱 상병.

여러분도 텔레비전에서 코를 땅에 묻은 채 군인들과 함께 뭔가 찾는 데 열심인 개들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쓰다듬으려면 엄청난 용기를 내야할 것 같은, ‘포스’ 넘치는 개들 말이죠. 이날 소중이 녀석들을 만나러 간 육군 제1군견훈련소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견’들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육군과 해군·해병대에서 활약 중인 군견은 모두 이곳 출신입니다.

파트너인 군견병과 함께 훈련

귀여운 개들이 떼로 모여 있단 소식에 김상훈 학생기자는 취재 전부터 들떴습니다. 그 모습에 이일보 군견 교육관은 주의사항부터 일러줬죠. “개들에게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익숙한 체취가 아니면 경계하거든요” 이곳 개들은 낯선 적군을 찾아내는 게 몸에 뱄죠. 반려견 다루듯 가볍게 여기면 공격당할 수도 있단 얘깁니다.

훈련장은 부대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산속에 있었습니다. 주변에 집 한 채 보이지 않는 적막한 곳에서 군견 아신은 한창 ‘보수 훈련’을 받고 있었어요. 보수 훈련이란 군견과 파트너인 군견병이 전문 교관의 지도 아래 담당 임무를 교육받는 걸 말합니다.

군견병·수색병·취사병 등 군인들이 각자 다른 보직을 담당하는 것처럼 군견에게도 저마다 다른 업무가 주어지는데요. 크게 정찰과 추적, 폭발물 탐지로 나뉘죠. 정찰견은 체취를 모르는 낯선 적군을 후각·청각 등의 감각을 총동원해 찾습니다. 추적견은 소지품 등을 통해 체취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특정 인물의 행방을 추적하죠. 폭발물 탐지견은 몸에 폭탄을 숨긴 자폭 테러범들을 찾아냅니다.

죽은 피부 세포 냄새로 사람을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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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항군을 찾기 위해 달리는 정찰견 ‘군졸’

아신은 정찰 담당견입니다. 아신은 어떻게 사람을 찾을까요. 김정화 교관은 “냄새 입자를 실은 공기는 평행선이 아닌 역삼각형 모양으로 불어옵니다. 아신의 코 앞에 냄새를 맡기 좋게 입자가 모이는 거죠”라고 설명했어요. 여기서 냄새 입자란 사람이 떨어뜨리는 죽은 피부 세포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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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폭발물 탐지견 ‘대박’이 훈련용 인지틀에 숨겨진 폭약을 찾고 있다. 먹이를 함께 숨겼지만
이날 대박은 폭약이 숨겨진 구멍만을 정확히 찾아냈다.

아신은 공중 목표물 수색 시범도 보였어요. 나무 등 물체 위에 높이 올라가 있는 적군을 찾는 일이죠. 군견병이 “찾아!”라고 명령을 내리면 숲 이곳저곳을 홀로 살피며 적군이 있는 나무의 위치를 파악해요. 그 후 출발점으로 돌아와 앉으면 군견병은 “어디!”라고 외칩니다. 적이 숨은 위치까지 자신을 안내하란 명령이죠. 실제 전투 상황이었다면 군견병은 물론 엄호조(적의 사격·관측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는 병사의 무리)와 총을 든 전투대기부대가 아신을 따라 적의 위치까지 쫓아갔을 겁니다.

이어 동반 수색 시범이 이뤄졌죠. 정찰견과 군견병이 함께 특정 구역을 살피는 건데, 김 교관은 “적의 체취를 맡으면 정찰견의 어깨뼈 근처의 털과 꼬리가 바짝 솟는다”고 말했어요.

무장공비를 발견한 군견 ‘노도’

김 교관은 20년 동안 군견들을 가르쳐왔습니다. 지금껏 그가 지도한 개는 1000여 마리에 달하죠.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군견은 ‘노도’라는 이름의 셰퍼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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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찰견 훈련 시범을 보인 임정욱 상병과 아신, 최태인 상병과 야자, 김현철 상병과 군졸(아랫줄 왼쪽부터). 그 뒤로 훈련을 지휘한 김정화 교관반장(오른쪽)과 취재를 맡은 김상훈 학생기자가 포즈를 취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강원도 강릉에 무장공비(무기를 소지하고 침투한 적군) 26명이 침투했습니다. 당시 김 교관도 노도를 비롯한 군견 50여 마리를 데리고 49일간의 공비 소탕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11월 5일 새벽, 작전을 담당한 고(故) 오영안 준장을 비롯한 303기무부대는 한창 회의 중이었죠. 이때 노도가 갑자기 숲을 향해 앉은 채 짖기 시작했어요. 나무 위에 잠복 중이던 공비를 발견한 겁니다. 그는 곧바로 노도를 저격했죠. 노도는 결국 가슴과 배에 총탄 4발을 맞고 숨졌습니다. 김 교관은 아직도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사방이 총소리로 가득했죠. 놀란 개들이 짖고 여기저기 변을 보는데, 녀석들을 다독이느라 무척 애먹었습니다.” 전장의 공포에 시달린 건 김 교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 노도가 죽은 5일 교전에서 오 준장 등 3명이 순직하고 병사 14명이 부상을 입었거든요. 이때 그에게 가장 힘을 준 건 다름 아닌 군견이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괜찮아’하고 녀석들을 다독이다 보면 저 역시 싸울 용기가 나곤 했죠.”

은퇴견 ‘세이지’가 들려주는 군견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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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안녕! 내 이름은 세이지야. 검정 래브라도 리트리버이고, 나이는 13살이지. 그렇다고 수학익힘책을 풀거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나이는 아냐. 사람으로 따지면 벌써 여든 살이 넘은 셈이거든.

그래도 꽤 동안이지? 나는 올초 은퇴했어. 지난해까진 대통령을 테러의 위협에서 보호하는 폭발물 탐지견으로 활약했지.

너희도 보다시피 군견이 되는 건 상당히 어려워. 나는 태어난 지 1년이 되지 않은,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군견 적격 심사를 봤어. 후각·청각 등 감각 능력과 체력·운동 능력을 테스트하고 사회성이 잘 발달했는지도 봐. 단체 활동이 잦은 만큼 사람이나 다른 개들을 만났을 때 늘 침착해야 하거든.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소유욕이야.

흔히 군인의 낙은 초코파이라고들 하지. 군견의 낙은 공놀이란다. 우리의 하루는 빡빡해. 이른 아침부터 군인들과 함께 육상·수중·레펠 훈련 등 고된 교육을 받지. 그런데 공을 갖고 뛰어 놀다 보면 스트레스가 싹 가셔. 사실 우리가 훈련에 성실히 임하는 이유도 바로 공이라는 점! 아까 중요하다고 말한 소유욕 평가가 뭐냐면, 바로 공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야. 작은 고무공 하나로 행복해하는 삶이라, 꽤 소박하지 않니?

나는 대대손손 군견으로 일해 온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단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군견으로 활약하셨고 형제도 모두 군견으로 일했지. 이처럼 훈련소의 개들 대부분 뼈대 있는 군견 가문의 후예들이야. 얼마 전엔 미국물을 먹은 ‘시로’라는 녀석이 새로 들어왔지. 2011년 빈 라덴 사살 작전에 투입된 미 군견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은 체세포 복제견이야.

군견은 이렇게 유전적으로 우수한 개들 가운데서도 능력이 눈에 띄게 탁월해야만 선발될 수 있어. 지금은 비록 하루 종일 개집에 누워 있는 신세이지만,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평범한 개집이 아니라니까. 탈락한 개는 어떻게 되냐고? 부대 안팎을 지키는 관리견, 경계 보조견으로 일하지. 옆방 루미(12살) 할아범도 경계 보조견으로 일하다 얼마 전 은퇴했어.

일할 때와 비교하면 은퇴 후 일상은 무척 단조로워. 손자뻘 되는 군견병들이 견사에 오면 같이 놀거나 산책을 하지. 어떤 개는 새 주인을 만나 훈련소를 떠나기도 해. 은퇴견을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제도가 새로 생겼거든. 나를 데려가고 싶단 사람이 나타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전우애란 게 참 질기더라. 교관들도 나도 그간의 정 때문에 헤어질 수 없어 계속 함께 지내기로 했지.

은퇴 전엔 내게도 꿈이 있었어. 나라에 공을 세운 개를 위한 비석인 충견비의 주인공이 되는 거지. 훈련소 한편엔 우리들의 우상 린틴·헌트·노도의 충견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어. 날카로운 눈빛, 용맹한 몸짓 모두 그들의 한창 때 모습 그대로지. 내게도 그렇게 위풍당당했던 젊은 시절이 있어. 지금은 털도 많이 빠지고, 근력도 약해졌지만 말이야. 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해.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고 뙤약볕을 함께 달리던 군인들, 군견들과의 잊지 못할 추억 덕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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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연경 인턴기자 ok76@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 취재=김상훈(서울 충암초 5) 학생기자, 도움말=육군 제1군견훈련소 이일보 군견 교육관·김정화 교관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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