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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제83화 장영근일기(25) 본지 독점게재|망명 허락해 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60년=11월17일
예정대로 새벽6시 「우찌야마」과장의 안내로 가라쓰경찰서를 나왔다. 해안도로를 따라 반시간쫌 달리니 후꾸오까 (복강)현 경찰본부의 경찰차가 대기해 있다. 우리셋은 「우찌야마」 과장과 작별하고 후꾸오까현 경찰본부 「다나까」(전중삼웅) 경부에게 인계되었다. 경찰차는 후꾸오까시내를 곧장 지나 시외의 조그마한 개인병원 앞에 멎었다.
후꾸오까시 근교의 가스야 (박옥)군이고 병원은 나가따 (영전) 산부인과의원이다. 병원에선 일반병실을 피하고 내실의 한 방을나와 만순의 거실로, 그 맞은편 방을 이병균군과 보호경찰관의 거실로 마련해 두고 있었다. 내 방은 남쪽바다로 창문이 나 있어 따스하고 좋았다.
원장 「나가따」박사는 규우슈 (구주) 대학 의학부 출신으로 부친이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현본부 경찰의 특별한 요청을 수락했다고 했다.
「나가따」박사의 부인은 당뇨병환자의 식이요법에 맞는 식사에 마음을 썼고 때로 김치를 구해 식탁에 내놓는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60년=11월19일
오늘 아침 조간신문들이 내가 처와 비서를 데리고 15일밤 사가 (좌하)현 해안에 밀입국하여 니시가라쓰 경찰서에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일제히 보도했다. 한국정부가 나의 밀항을 확인하고 즉각 송환을 일본정부에 요구했다는 보도도 나란히 실려 있다.
석간뉴스에는 조총련이 나에게 망명을 허용치 말고 본국에 송환하라는 성명을 내고 그들의 후꾸오까현본부 조용학세계경제부장이란 사람이 구주관구 경찰국장을 방문, 그들의 요구를 전달했다고 한다.
후꾸오까현 경찰본부는 내 신변의 위험을 고려하여 극비에 부치고 「다나까」경부책임아래 외사과의 「나가에」(영강승언)부장을 비롯한 5명의 경찰관이 교대로 나가따 병원을 지켰다.
어제 하오2시께는 「다나까」경부와 함께 외무성 아시아국 동북아과의 「야나기야」(유곡겸개)사무관이 나가따 병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한일회담 일본측 대표단의 일원이어서 나와 면식이 있던 사람이다. 그는 내게 밀항의경위, 망명 이유, 현재의 심경과 희망을 청취한뒤 곧바로 도오꾜로 돌아갔다.
나는 「야나기야」사무관에게 니시가라쓰 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을 반복하고 여비는 한화 4만환과 일화 4만8천여엔 밖에 갖고 있지 않으나 도오꾜에 가면 교포중에 친분있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일본정부에 물질적 원조를 청할 생각은 없다고 밀했다. 나는 나의 망명이 허용되기를 희망하고 승인되면 우선 게이오(경)응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싶다고 말했다.
서일본신문은 외무성 「이세끼」(이관우이랑) 아시아국장과 「곤도」(근등진일) 정보문화국장이 검찰청 및 입국관리소에서 밀입국자로서의 국내법에 의한 처리가 끝난후에 정치망명의 승인 혹은 거부를 결정하게될 것이며 그때까지는 외무성으로서의 태도를 결정치 않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국제법의 통설이나 선진국의 관례로 보아 정치망명을 승인할수 밖에 없으나 즉각 이를 허용한다고 할 때는 희망을 걸고 있는 장면정부와의 한일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정치적 고려인듯 했다. 아마도 일본정부는 나에 대한 법적조치를 진행하면서 나의 망명에 대한 한국내여론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리자는 속셈인듯 하다. 아사히 (조일)신문은 대체로 나의 판단과 비슷한 해설을 결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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