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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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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랜만에 정치하는 사람의 입에서도 좋은 소리를 들었다.
제128회 정기국회 개회식에서다.
이재형의장은 『일절의 아집을 결연히 훌훌 털고 일어나 폭넓은 이해와 관용과 화합의 미덕, 그리고 슬기와 지혜를 일깨우고 되살려 당이당약이 아닌 국리민복을 증진시키는데 주력하자』고 하면서 『이빨은 딱딱하기 때문에 닳거나 부러지지만 혀는 부드럽기 때문에 닳지도 않고 부러지지도 않는다 (치창설존) 』는 옛말까지 인용했다.
힘의 논리와 강용의 덕만을 숭상하는 오늘의 정치인들에겐 큰 교훈이 되겠다.
노자는 「상선약수」라면서 유약을 최고의 덕으로 내세웠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이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은 물의 유약함을 대신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천하막유약우수 이공견강자막지능선 이기무이역지야)』
곧 『유약이 강강을 누른다』 (유약승강강)는 것이 도를 내세우는 그의 사상의 본체다.
사물은 유약한 때일수록 생기가 충만하고, 견강할수록 생기가 쇠퇴한다고 한다.
그걸 노자는 더 생생하게 설명한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부드럽고, 죽으면 뻣뻣해진다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그러므로 『딱딱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생의 부류 (견강군사지도 유약음생지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묘리를 실행에 옮기는 이는 없다. 그래서 노자는 통탄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더 준열한 대목도 있다. 『나라의 욕된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것이 일국의 군주요, 나라의 불길한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것이 천하의 제왕』 이라는 성인의 말을 인용한뒤 『바른말은 얼른 보기에 반대하는 것같이 보인다(정언고반)』란 말을 덧붙인다.
그점에서 노자는 정치가들에게 충고한다.
『도를 가지고 제왕을 보좌하는 사람은 무력으로써 천하의 패권을 잡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보복을 받기 때문이다 (이도주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노자의 말 가운데는 두려운 일구도 있다.『강하기만한 자는 정상적인 죽음을 할수 없다 (강양자부득기사)』는 것이다.
그는『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고기를 삶는 것과 같다(치대국야팽소선) 』고도 했다. 남비의 고기를 잘 익힌다고 자주 휘젓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의 여야 정치인들이 다만 「강량자」 가 되어 유약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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