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국회는 국정의 동반자” 반드시 실천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어제 20대 국회 개원식의 박근혜 대통령 축하연설은 대통령의 정국 인식과 향후 국회와의 협치 가능성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정치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하고 정쟁을 거둬낼 정치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건 화합과 협치이며 정부도 국회와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을 하겠다”고 묵직한 약속을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앞으로 3당 대표회담을 정례화하고 국회를 국정의 동반자로서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19대가 국민의 고단한 삶은 안중에 없고 모두들 계파와 정파의 이익에 사로잡혀 극한적인 정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헌신하기는커녕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도 그런 정치를 만든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친박세력을 통해 사실상 집권당을 장악하고, 집권당의 원내대책을 통해 입법부를 자신의 뜻대로 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자율성이나 입법부 독립성의 가치를 지키려 한 당내 리더들은 빈 껍데기 신세로 전락하거나 제거됐다. 야당이 죽기 살기로 정파적·감정적 투쟁을 일삼은 것엔 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에 반발한 측면도 있다. 헌법상 국가 원수에 국민적 대통령으로 남아야 할 대통령이 어느덧 특정 계파의 보스처럼 국민에게 인식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어제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한국 정치에서 협치와 화합이 결핍된 원인을 설명하고 그 책임의 일단이 자신에게 있으며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은 준엄했다는 자성(自省) 한마디가 없었던 건 유감이다. 원인과 책임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새로운 다짐이었기에 미흡했다. 협치와 소통의 책임의 반쪽 이상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0대 국회의원 300명이 진정성이 깊이 느껴지는 대통령의 발언을 들었다면 다수는 대정부 협력의 흔쾌한 마음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국회를 국정의 동반자로 존중하겠다는 발언은 올바른 인식으로 환영한다. 지난달 3당 원내대표와 만날 때 약속했던 ‘3당 대표회담의 정례화’를 재확인한 것도 기대감을 주었다. 박 대통령은 이를 반드시 실천에 옮겨 행정부와 입법부가 협력하는 정치 환경을 조성해 주길 바란다.

조선·해운의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우리 경제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기업과 채권단이 사즉생의 각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언급에선 대통령의 의지와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부실관리와 무분별한 낙하산 인사, 폭탄돌리기에 급급했던 정부당국의 안일한 대처에 설명이 없었던 건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20대 국회의원들에게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며 초심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금언은 임기 1년8개월 남은 박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