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여당의 상임위 집안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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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원내 2당으로 내려앉은 게 꼭 두 달 전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말로는 계파 청산과 환골탈태를 외쳤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지난 10일 새누리당이 경기도 과천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122명 의원 전원을 모아놓고 연 정책 워크숍도 마찬가지였다. 유승민 의원 등 탈당파들의 복당을 포함해 국민이 요구해온 개혁 과제들은 완벽하게 실종됐다. 대신 노른자위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고 인기 상임위에 배치되려는 의원들의 로비전만 치열했다.

정진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부터 ‘계파 청산’ 논의를 기피했다. 청와대와 친박계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하거나 민주적인 당정 관계를 주문하는 의원도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의원이 토의시간에 졸기 일쑤였다. 이들의 관심이 온통 상임위 배정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10석에서 8석으로 준 상임위원장직을 놓고 중진 의원들이 벌인 자리다툼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관례상 상임위원장을 맡아온 3~4선 의원 24명은 워크숍 내내 “내가 적임자”라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가 워크숍 일정을 쪼개 이들 전원을 모아놓고 중재를 시도했지만 타협이 이뤄질 리 만무했다. 고육지책으로 20대 국회 전반기에 한해 2년인 상임위원장 임기를 1년으로 줄여 24명 전원이 돌아가며 자리를 맡게끔 하는 방안까지 검토됐다고 한다.

전문성이 중요한 상임위원장 임기를 반 토막 내면 상임위의 생산성이 급락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의원들의 자리 욕심이 워낙 강하니 이런 꼼수가 나온 것이다. 법사위·정무위·기획재정위 등 인기 상임위에 지망자들이 3~4명씩 몰리면서 운영·국방·정보위 등 비인기 상임위를 뺀 2~3개 상임위는 경선으로 위원장을 뽑기로 가닥이 잡혔다. 당이 뿌리까지 흔들리는 마당에도 자리 챙기기에만 급급한 여당 중진들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인선이 확정된 비인기 상임위원장 가운데에도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국가정보원 출신인 이철우 의원이 정보위원장을 맡게 된 점이다. 국정원에서 국장까지 지낸 뒤 정계에 투신한 이 의원은 국정원이 정치 개입 의혹에 휩싸일 때마다 옛 직장을 적극 두둔해왔다. 2013년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국정원 개혁 여론이 거세게 일자 “개혁은 할 만큼 했다. 더 이상 하면 일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주장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이 의원이 정보위원장이 된다면 국회 차원에서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인 정보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상임위는 국회에 제출된 모든 법률안의 1차적 가부를 결정하는 핵심기구다. 그런 만큼 상임위원장은 고도의 사명의식과 당파를 초월한 리더십이 요구된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인 이유가 그런 고귀한 의식의 발로 때문이라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영수증 발급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가 매월 1000만원씩 지급되고, 5급 이상 고위공무원이 10명 가까이 배치되는 노른자 자리여서 대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을 것이라고 여길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