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교장관의 방러, 적극적 다원외교 계기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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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어제 러시아로 떠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를 비롯한 현안을 논의한다. 놀라운 점은 2013년 장관 취임 이후 첫 러시아 방문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지난 1월 6일 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이에 따른 3월 2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 채택 이후 100일이 넘은 시점의 방러는 만시지탄이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하나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6자회담 참가국이다. 이번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이 합의했던 안이 통과되기 직전에 개입해 채택을 하루 늦춘 것은 물론 내용도 완화시켰다. 북핵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미·중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런 러시아에 한국 고위급 인사의 ‘외교적 스킨십’이 이토록 소홀했던 것은 국익 차원의 문제다. 실제로 양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공조 방안을 전화로만 협의했다. 지난 2월 안보회의가 열렸던 독일 뮌헨과 지난 4월 아시아 교류·신뢰구축회의(CICA)가 개최됐던 중국 베이징에서 양자 회담을 열었을 뿐 서로 상대 국가를 방문하는 적극 외교는 없었다. 자칫 러시아가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최근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와 관련해 반대와 우려 입장을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극동 개발과 양국 물류 연결 등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할 사안이 적지 않다. 북핵 사태로 중단된 남·북·러 3각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윤 장관의 이번 방러가 한국 외교가 미국과 중국 일변도의 ‘G2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로 전환하는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조와 동북아 정세, 핵심 주변국들의 외교정책이 급변하는 상황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