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쪽이 北核 결단을 내리자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핵 위협이 한반도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9일 국회 보고에서 북한이 70여차례의 고폭실험을 실시했고 사용후 연료봉 8천개 중 소량을 재처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북한의 핵 능력과 의도에 대한 논란을 초래한 바 있다.

이 논란은 국정원 보고 사흘 후인 12일에 '북한이 지난 8일 영변 핵시설 사용후 연료봉 8천개 전체에 대한 재처리 작업이 완료됐다'고 미국 측에 통보한 내용이 보도됨에 따라 확대되고 있다.

북한이 실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조차 없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기 위한 수순을 꾸준히 밟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지난 수년간 취해온 대북 햇볕정책이 크게 빗나갔음을 의미한다.

현 정부는 따라서 실패한 정책을 계승한다고 운운할 것이 아니라 북핵 위기를 보다 현실적이고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정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 12일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의 결정적 증거인 크립톤85 방사선 가스 검출 보도에도 불구하고 역시 12일에 끝난 제1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은 핵 문제를 적절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과연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안 가질 수 없다. 북한은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북한이 소형.경량 핵탄두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핵무기의 실전배치까지 꾀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응에만 집착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결과적으로 한.미 공조가 가장 절실한 이때 양국을 갈라놓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건설 사업 중단, 북한을 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구체화 등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북한의 핵 의도를 말려야 할 우리는 오히려 미국을 말리려는 데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뿐인가.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는커녕 개성공단 착공식을 적극 지지하고 있고, 경수로 사업에 있어 토목공사라도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주도 아래 확대되고 있는 반핵.반金 국제연대에서 한국 정부만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질까 걱정이 앞선다.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이나 호주.일본.영국과 같이 미국과 뜻을 같이한 국제연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계속 핵 카드를 휘두른다면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군사적 대응을 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택의 폭은 점점 좁혀지고 있다. 북한을 감싸는 행위는 결국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있어 한국의 위상과 입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방중시 "이제 북한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듯싶다.

결국 盧대통령이 언급한 결단을 내려야 할 쪽은 우리다. 결단은 여러 형태가 가능하겠지만 우선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의 차별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진지한 상호주의에 임하지 않는 한 한.미.일 정책공조만이 북핵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 역시 결단을 내려야 할 사항이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대화로 설득돼 그들의 생존 수단인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우리가 계속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은 그들의 생존수단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포기를 유도하려면 북한이 핵 개발을 강행할 경우 경제적 파탄을 모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북한의 경제문제는 핵 포기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고, 이것이 결국 북한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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