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가득한 진짜 세상과 마주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3호 14면

이상

전에는 전혀 고민해 본 적 없는 문제들을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문제로 그려 내고, 읽는 동안 마치 주인공의 상황이 지금 내게 닥친 문제인 것처럼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날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가 그랬다. 그들의 고민이 마치 내 문제인 듯 끙끙 앓으며, 내 영혼은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의 『날개』를 읽을 때 내 마음에는 새로운 고민의 다락방이 생겼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매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 지구라는 대형 열기구 위에서 나는 그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참신한 어지럼증이었다. 무의식으로만 느낄 수 있었던 지구의 속도를 그 순간 의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지구라는 폭주기관차 위에서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대로 하차할 수 없다. 『날개』의 주인공은 이 문장을 통해 1초에 30km의 속력으로 질주하는 지구처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이 세상에 대한 도피심리를 고백한 셈이다. 『날개』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희미하게 인식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알기 싫어 하는 마음의 정체’를 파고든다.


‘나’는 곳곳에서 자신의 문제를 고백한다. 자신은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로서, 아내와 삶을 완전히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만 공유하는 사람이라 털어놓는다.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그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멀리 떨어뜨려 놓은 은둔형 외톨이에 다름 아니다. 아내는 밤마다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을 손님으로 받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절대 그 방에 들어가선 안 된다. 아내는 마치 비밀의 대가를 치르듯이 남편에게 화폐를 전해 주며, 밥도 차려 주고 다정한 말도 속삭여 준다. 보통 사람이라면 금세 눈치챌 이 비참한 상황을 그는 진심으로 모르는 척한다. 그의 의식은 아내의 비밀을 눈치채는 것을 거부하고, 무의식은 아내의 비밀을 향한 멈출 수 없는 탐구욕을 느낀다. 비틀거리는 결혼생활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아내의 비밀을 몰라야 한다’는 위태로운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어떤 경제 활동도 하지 않는다. 아내는 얇은 장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밤마다 ‘남자 손님’을 들이고, ‘나’는 아내가 없을 때만 아내의 방에 들어갈 수 있다. 아내는 정기적으로 남편에게 화폐를 쥐어 주는데, 마치 ‘나의 비밀을 눈감아 주는 대신, 당신에게 이 돈을 지불할게요’라는 무언의 명령어를 담고 있는 듯하다.


보호막을 벗고 자기 발자국 내딛기밤마다 남자 손님들을 받는 아내가 바로 옆방에 있는데 ‘아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그가 ‘약간 모자라 보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다. 아내를 의심하지만 아내를 적극적으로 다그칠 수 없는 심리 저변에는 ‘아내를 부양하지 못하고, 아내를 생존 전선으로 내몰아 버린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숨어 있다. 어쩌면 ‘아내에겐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다가올 더 아내와 함께 살 수 없는 끔찍한 파국의 시간이 아닐까? 비밀을 알고 난 후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 고민의 시간을 끝없이 유예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이 승리한다. 그는 아내가 정기적으로 그에게 쥐어 주는 화폐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는 아내가 준 화폐를 차마 바깥에서 쓰지 못하고, 아내에게 도로 쥐어 주면서, ‘그날만은 아내 곁에서 잠이 드는 것’에 성공한다. 그는 처음으로 ‘아내의 거래’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바꾸어 ‘자신의 거래’를 성사시키는 주체가 된다.


하지만 은밀한 기쁨은 잠시뿐,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집에 돌아온 날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는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을 잃고 만다. 아내의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수면에 빠지고, 몇 주 동안 시체처럼 잠만 자야 했던 이유가 바로 아내가 자신에게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먹였던 수면제 ‘아달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내는 아달린으로 남편의 의식을 마비시킴으로써 그가 진정한 주체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아달린은 그가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간 것이다. 더 참을 수 없는 그는 드디어 아내의 집을 뛰쳐나온다.


아내의 문패가 걸렸지만 ‘자신의 방’만은 존재했던 그 집은, 나를 ‘진정한 나’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게 하는 폭력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 대목은 그가 아내가 통제하는 세계를 벗어나 드디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나마 ‘자신의 발자국’을 내딛기 시작했음을 증언한다. 마지막 장면은 “흡사 유곽 같은 느낌이 없지 않은, 33번지”의 은둔으로부터 “상처로 가득한 진짜 세상”으로의 눈부신 도약의 순간을 내포하고 있다.


의식을 향한 무의식의 극적 승리『날개』는 매우 특별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내세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영혼의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당신을 보호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가족의 보호, 직장의 보호, 조직의 보호, 그리고 당신의 명함이 주고 있는 보호막이 있을 것이다. 그 보호막은 우리를 살아남게 하지만, 때로는 마음의 눈을 가려 진정한 세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내가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는 차라리 못 본 척하고 싶듯, 우리가 저 찬란한 실재를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이 바로 자기검열이며 방어기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그 부끄러운 비밀들의 실체를, 우리는 끝내 알아내야 한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언젠간 후회할지라도 말이다. 그 실재계의 비밀에 눈을 감는 한, 우리는 아달린을 아스피린으로 착각하고 매일 복용한 『날개』의 주인공처럼 ‘마비된 의식’ 속에 우리 자신을 가두게 된다. 나에게 『날개』는 ‘의식을 향한 무의식의 극적인 승리’를 그려낸 드라마로 다가온다. 의식은 끊임없이 아내의 비밀을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마음 깊은 곳, 즉 무의식에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알고 싶었고, 이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모른 척’하고 싶은 방어기제가 의식의 핸들이라면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날 것이고, 그 진실 앞에서는 세상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무의식의 간절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나는 『날개』의 주인공이 결국 승리했다고 본다. 그는 이제 더 신경안정제에 취한 은둔자가 아니다. 그는 진짜 세상에 한 걸음 내디딤으로써 진정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제 그는 날아오를 것이다. 상처를 딛고. 아픔을 딛고. 절망을 딛고. 그는 이제 트라우마의 정체를 알기 시작했으므로. 상처의 풍경을 용감하게 대면하기 시작했으므로 ●


정여울

ADVERTISEMENT
ADVERTISEMENT